[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양반들이 어부(漁父)가 된 이유는?

임천한흥(林泉閑興) 때문이지!

슬기로운 국어 학습
(5) 고전시가에서 시적 공간의 의미
석양(夕陽)이 비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이하, 후렴구 생략)
버들이며 물가의 꽃은 굽이굽이 새롭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이하, 후렴구 생략)
삼공(三公)을 부러워하랴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춘(春) 6>

궂은 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
낚싯대 둘러메니 깊은 흥(興)을 못 금(禁)하겠다
연강(煙江) 첩장(疊)*은 뉘라서 그려낸고 <하(夏) 1>
물외(物外)에 조 일이 어부 생애 아니러냐
어옹(漁翁)을 ?디 마라 그림마다 그렷더라
사시(四時) 흥(興)이 가지나 추강(秋江)이 으뜸이라 <추(秋) 1>물가의 외로운 솔 혼자 어이 씩씩고
험한 구름 (恨)치 마라 세상(世上)을 가리운다
파랑성(波浪聲)을 싫어 마라 진훤(塵喧)*을 막 난도다 <동(冬) 8>
*첩장: 겹겹이 둘러싼 산봉우리. * 진훤: 속세의 시끄러움.

윤선도,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물가…시냇물…낚싯대…연강(煙江)…어부 생애…어옹(漁翁)…추강(秋江)…물가…파랑성(波浪聲)

조선 문학에 많이 나오는 공간적 배경 중에 하나가 물가, 강, 호수이다. 이 공간들은 자연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인데, 그 속에 있는 시적 화자는 자신을 ‘어부’, ‘어옹(漁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고된 노동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가로운 여유와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고 마음 편히 삶)을 누리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낚싯대’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유로운 강태공의 여유를 보여주는 소재다. ‘파랑성(파도 소리)’이 들려오는 ‘연강(안개 자욱한 강)’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모습은 조선 문학에서 흔히 나오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다.

버들…꽃…춘(春)…비…하(夏)…사시(四時)…추강(秋江)…추(秋)…솔…동(冬)

조선 문학에 자주 나오는 제재가 사시(四時), 즉 사계절이다. 계절별로 특징적인 것이 있고, 그것과 관련하여 풍경이든 정서든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각 계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봄과 관련한 소재 중에 많이 나오는 것은 ‘버들(버드나무)’과 ‘꽃’인데, 이 작품에도 이용됐다. 여름 하면 ‘비(장마)’만한 것이 없다. 가을을 느끼게 하는 소재는 다양하나,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추강(가을 추, 강 강)’으로 가을을 언급했다. ‘솔(소나무)’이 꼭 겨울과만 관련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종종 겨울의 매서운 추위, 또는 차가운 눈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솔의 씩씩한 기상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삼공(三公)…만사(萬事)…물외(物外)…세상(世上)…진훤(塵喧)

조선 문학에서 자연의 세계와 대립되는 공간이 바로 인간 세계다. 그 세계는 ‘삼공(三公: 삼정승으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일컬음)’, 즉 부귀영화를 누리는 벼슬(권력)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는 세계다. ‘진훤(塵喧: 먼지 속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진(塵: 먼지)’은 인간들이 사는 속세를 뜻한다. 인간과 수레들이 왔다 갔다 하는 길거리는 그들에 의해 일어나는 먼지로 자욱하기 때문이다. ‘훤(喧: 시끄러운 소리)’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싸우는 소리다. 따라서 ‘진훤’은 세속적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위해 다투는 모습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물외(物外)’에서 ‘물(物: 사물)’은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실재적 사물이다. 따라서 그것이 있는 세계는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세계다. 그러므로 ‘물외’는 인간 세상 밖의 공간이다. 즉 자연의 세계인 것이다.

삼공(三公)을 부러워하랴 만사(萬事)를 생각하랴…깊은 흥(興)을 못 금(禁)하겠다

‘~하랴’는 설의법을 위한 의문문에 쓰였다. 즉 ‘부러워하지 않겠다’ ‘생각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쓰인 것이다. ‘삼공’과 ‘만사’에 대한 거부감을 유사한 시어들을 반복함으로써 드러내고 있다. ‘만사(萬事)’에서 ‘사(事: 일)’는 곧 인간 세계의 일, 세속적인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흥(興)’은 금치 못한다고 한다. 재미나 즐거움을 말하는 흥은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임천한흥(林泉閑興: 자연에서 즐기는 한가로운 흥)을 말한다. 이렇게 조선 문학에서는 인간의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고, 자연에서의 한가로움을 느끼는 흥을 가까이하는 태도가 자주 등장한다.

험한 구름 (恨)치 마라 세상(世上)을 가리운다…파랑성(波浪聲)을 싫어 마라 진훤(塵喧)을 막 난도다

옛날 시가에 가장 많이 쓰이는 수사법을 꼽는다면 대구법이다. 비슷한 어구를 짝지어 표현하는 대구법은 운율감과 함께 강조 효과를 낸다. ‘험한 구름 - 파랑성’, ‘(恨)치 마라 - 싫어 마라’, ‘세상(世上)을 - 진훤(塵喧)을’, ‘가리운다 - 막 난도다’와 같은 대구를 음미해 보자. ‘구름’과 ‘파랑성’에 의해 ‘세상’, ‘진훤’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구름’, ‘파랑성’은 자연의 세계를 감싸고 있는 것으로, 그것과 인간의 세계를 단절시킨다. 그러므로 두 자연물은 ‘’하거나 ‘싫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시구에서 음미해 봐야 할 것이 ‘마라’, 즉 명령하는 말투다. 명령은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남에게 하라고 해 놓고 자신은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 시구는 ‘구름을 ’하지 않겠다, ‘파랑성을 싫어’하지 않겠다는 시적 화자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윤선도(尹善道)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의 반대파에 의해 귀양 생활을 해야 했다. 따라서 ‘세상’의 ‘만사(萬事)’와 ‘진훤(塵喧)’은 더럽고 속된 것이었다. 그는 보길도라는 섬을 택해 세상을 등졌다. 인간 세상과의 단절, 그것을 은일(隱逸: 세상을 피하여 숨음)이라고 한다. 이는 죄를 지어 어쩔 수 없이 몸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세상을 스스로 피해 자연에 몸담는 것이다. 결국 윤선도는 깨끗함을 간직하기 위해 세상을 등지는 것을 택했다.

☞ 포인트

성보고 교사
① ‘강, 호수, 물가’라는 공간이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자연의 세계임을 알아 두자.

②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소재들을 기억해 두자.③ 인간 세상을 멀리하는 은둔은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는 심리를 나타낸 것임을 명심하자.

④ 설의법의 강조 효과, 대구법의 운율감, 명령법의 강조 효과 등을 느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