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우기' 바이든, 反中전선은 빼고 지운다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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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당선인은 현직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의사당 폭동 사태, 그리고 코로나19 대확산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국 속에 오는 20일 임기를 시작합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외교·경제·안보·기후문제 등 트럼프 행정부 전반의 정책을 뒤집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른바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 빼고 전부 다)’ 전략입니다.

反中 층위 넓어진다
그런 바이든 당선인도 적어도 한 측면에서는 전임자의 방향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바로 반중(反中) 전선입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지난해 11월 “바이든은 더 부드러운 표현을 쓰겠지만 정책은 여전히 강경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죠.물론 바이든 당선인의 반중전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는 다를 전망입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일방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과 ‘다자(多者)주의’를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면 동맹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반중전선에 함께 참여하라는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바이든식 반중’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 12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미국은 어떻게 아시아 질서를 강화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캠벨 전 차관보는 중국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군사 영역을 나눠 ‘투트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는 “모든 사안에 초점을 두는 거대한 연합체를 구성하는 대신에 개별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연합체를 추구해야 한다”며 경제 영역에서는 ‘민주주의 10개국(D10)’, 군사 영역에서는 ‘쿼드(Quad)’ 확대를 반중 전선의 두 축으로 제시합니다.
이에 한국도 일찌감치 참여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미국 아스펜연구소 안보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기간에 선언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중전선 참여에 극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한국이 선제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힌 것은 꽤나 이례적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회의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반중’이라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라 분석합니다. 회의체의 성격이 명확해지기 전부터 참여하면 중국이 이것에 대해 나중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쿼드’도 계승 전망
이 기고문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캠벨 전 차관보가 D10 뿐 아니라 ‘쿼드 확장판’도 함께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쿼드는 2007년 출범한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구성한 반중 군사동맹체입니다. 비공식적으로 군사 훈련을 하는 정도의 조직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이를 공식화하고 참여국을 확대해 동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다시 말해 쿼드는 대표적인 트럼프식 반중전선이었던 것이죠.그런데도 바이든 사람이 쿼드의 확대를 말합니다. D10, 혹은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는 무역·기술·국제 표준 등에 있어서 중국에 대항하는 연합체로 활용하고 중국의 군사적인 팽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쿼드를 ‘재활용’하겠다는 뜻입니다. 강 장관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참여 의사는 선제적으로 밝혔던 것과 달리 쿼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강 장관은 쿼드의 확장판을 뜻하는 ‘쿼드 플러스’ 참여에 대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쿼드 플러스라는 단어 자체가) 일부 언론에서 ‘저널리스틱’하게 쓰기 위해 나온 말 같다”면서 “미국 스스로가 쿼드 플러스란 것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이죠. 이어서 “(미국이) 여기에 참여하라고 요청한 것도 없는 상황”이라 덧붙이며 쿼드 플러스 참여에 선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한국이 이미 쿼드 플러스에 참여해왔다는 보고서가 나옵니다.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ESRC)의 연례보고서는 한국이 이미 지난 5월 쿼드 플러스의 첫 장관급 회담에 참여했다고 명시합니다. 보고서는 “주목할 만한 것은 (2020년) 처음으로 쿼드의 확장 형태인 쿼드 플러스로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다는 점”이라면서 “3~5월 사이에만 최소 세 차례 이상 화상 회담을 했고 5월 11일에는 최초의 ‘장관급’ 회담이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는 당시 회담에 대해 “코로나19 대응 국제 협력을 위한 회의”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 감축 등 동맹 현안으로 인한 갈등은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인 지난해 10월 연합뉴스에 기고문을 보내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의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지 않겠다”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동맹 관계는 특별하다는 바이든 당선인의 철학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쿼드 참여를 회피하는 등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의 여지는 줄어들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동맹을 특별하게 본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칙주의자 바이든에 대항할 원칙 있나
국제 문제에 있어서의 원칙 중시야말로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가장 큰 차이가 될 것입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동맹국에 대해서도 거칠게 대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을 5조원까지 5배를 늘리겠다는 발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끔찍한 합의”라 부르며 LG와 삼성을 공격하는 발언 등이 대표적입니다.반면 바이든 당선인은 적어도 대외정책 분야에 있어서는 확고한 원칙주의자입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여러 차례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할 것”이라 말해왔습니다. 이는 지난 4년간 시시각각 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만 발맞춰온 대미(對美) 외교의 틀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 원칙에 따라 미국이 생각했을 때 상응할 만한 걸 주기만 하면 됐다면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동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