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의 통찰과 전망] 아날로그와 디지털, 쌍방향 융합 시대

더디게 진행되던 디지털 전환, 코로나로 가속
올해는 아날로그·디지털 교차 에너지 분출할 것
산업구조와 시장주도권 재편 속 기회 잡아야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동해의 울릉도·독도 주변 해역은 난류(暖流)와 한류(寒流)가 만나는 조경수역(潮境水域)으로 물고기가 모여든다. 북극에서 남하한 차갑고 무거운 한류가 아래로 내려가고 적도에서 북상한 따뜻하고 가벼운 난류가 위로 올라가는 교차현상으로 바닷물이 섞이면서 풍부해진 산소와 플랑크톤이 역동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주요 어장들은 공통적으로 해양조류의 경계권역에 위치한다.

바다의 난류·한류 경계선에서 에너지가 분출되듯이 역사적으로도 특정 문명이 다른 문명과 만나면서 조성되는 긴장과 갈등, 협력관계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났다. 오랫동안 다른 문명과 접촉하지 않았던 고대 이집트, 남아메리카의 잉카와 아즈텍은 독자적으로 이룩한 높은 수준에도 불구하고 외부 문명과 만나면서 단기간에 쇠퇴했다. 여타 문명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적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면서 역동성을 상실한 경우다.산업과 기술도 마찬가지다. 고대에 석기로 시작된 농업은 철기를 제조하는 금속기술이 접목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갔고, 봉건시대의 전통적 가내수공업은 증기기관이 도입되는 근대적 공장으로 변모하면서 산업혁명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기존의 산업은 다른 영역에서 발달한 새로운 기술과 경계선에서 만나고 섞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산업구조 변화의 관점에서 2020년은 아날로그 질서가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이었다. 21세기 초반부터 마른 땅에 물이 스미듯이 진행되던 디지털 전환은 지난해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를 촉매제로 가속도가 붙었다. 방역을 위해 도입된 비대면 방식이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교육·의료·공공부문 등 그나마 기존 아날로그 질서가 지배하던 영역도 급속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2021년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는 확장된 경계선에서 에너지가 분출되는 격변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흔히 디지털 전환 과정을 아날로그 산업의 쇠퇴와 디지털 산업의 약진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 디지털 전환의 과정에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기술 기업의 급성장은 1단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2단계에서는 기존 아날로그 질서에 소속됐던 전통적 산업과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과 접목돼 사업 모델을 재정립하는 흐름이 확산된다.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생활밀착형 전통적 아날로그 서비스 산업인 세탁, 식당, 음식배달, 주차장, 정육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 가치를 높이면서 사업을 확장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나아가 기존 아날로그 기업들이 보유한 유·무형의 자산을 활용한 디지털 혁신으로 신생 기술 기업들의 도전을 극복하고 재도약에 성공하는 사례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과 제품의 수명 주기가 길고 기존 개념이 연장되는 시기의 산업은 고체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신기술의 등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에 산업은 액체처럼 유동화된다. 기술과 제품, 고객과 시장의 경계선에서 에너지가 분출되고 융합되면서 역동성이 높아진다.

2020년에 디지털 전환의 방향성을 확인했다면 2021년은 영역을 불문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선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로 산업구조의 변화와 시장주도권의 재편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기존 아날로그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과감하고 신속하게 변화를 추진하기에는 내외부적 난관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충격으로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신진 디지털 기업의 거센 도전을 체감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고조된 위기감은 역설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위한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격변의 시기를 맞아 방어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올해는 기존 아날로그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일수록 심기일전해 디지털 혁신을 통한 재도약의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