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삼성 "코로나 위기-디지털 전쟁 지휘할 사령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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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영 돌입한 삼성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8일 오후. 주요 삼성 계열사는 정적에 휩싸였다. 재판부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감안,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기에 충격이 더 컸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디지털 전쟁을 지휘할 사령관을 잃었다”며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에 또다시 봉착했다”고 토로했다.
반도체·휴대폰 등 글로벌 경쟁력 일거에 잃을 수도
부도덕한 기업 낙인 탓에 브랜드 가치도 하락 우려
"2017년 李부회장 첫 구속 때보다 더 두렵고 엄중"
의사결정 시스템 무너져
전통적인 삼성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총수-미래전략실-전문경영인’으로 이어지는 3단계 구조다. 일상적인 의사결정은 계열사 전문경영인이 맡지만 큰 재원이 소요되거나 삼성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나서 교통정리를 한다. 최종 의사결정자는 총수다.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3개 기둥 중 2개가 사라졌다. 경제계에서 ‘삼성이 멈춰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총수와 계열사를 이어주던 미래전략실은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곧바로 해체됐다. 계열사 간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서 ‘코디네이터(조정자)’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의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있지만 미래전략실만큼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부회장의 재수감으로 사업지원 TF를 이끄는 정현호 사장에게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사업지원 TF는 특검 등으로부터 ‘미래전략실의 부활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경제계에선 당분간 삼성이 대규모 투자 또는 초대형 인수합병(M&A) 등을 결정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수십~수백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 추진 여부를 결정할 만한 인물 및 조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당분간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권한과 책임이 제한적인 전문경영인으로선 현상 유지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M&A·대규모 투자 올스톱
삼성은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됐던 2017년 2월부터 약 1년간 ‘대규모 투자와 M&A가 올스톱’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인수가액 조(兆)단위 M&A는 이 부회장이 구속되기 약 3개월 전인 2016년 11월 이뤄진 하만 인수(80억달러)가 마지막 사례다.당시 삼성 경영진은 “답답하고 무섭고 참담하다”며 ‘총수 부재’ 상황에 대해 속내를 털어놨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윤부근 당시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 대표(사장)는 “삼성이 어선 여러 척이 공동 작업하는 선단이라면 나는 선단에 속한 한 배의 선장일 뿐”이라며 “선단장이 부재 중이라 미래를 위한 투자와 사업구조 재편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현재 상황은 3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삼성은 애플, 구글, TSMC,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의 발달로 경영 환경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삼성의 ‘미래 준비’가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외 신인도와 브랜드 가치 하락도 우려된다. 총수가 구속된 부도덕한 기업이란 이미지 탓에 매출이 줄고 글로벌 기업의 제휴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분석이다.한편 이 부회장은 2017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약 1년(354일)을 서울구치소에 있었기 때문에 내년 7월말까지 약 1년 6개월의 형기를 남겨 두게 됐다.
송형석/황정수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