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왜 '무법 상태'가 됐을까? [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는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그러면서 지난해 12월31일까지 개선 입법을 주문했는데요. 이에 따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는 임신 14주 이내에 이루어진 낙태행위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각각 제출했습니다.

여성계에서는 낙태에 제한을 두지 말자고 주장하고, 종교계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면서 논란이 극심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공청회만 열렸을 뿐 관련 법안은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헌재가 형벌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해당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낙태는 불법이 아닙니다. 결국 낙태가 '무법 지대'에 놓인 겁니다.국회가 헌재의 주문마저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여당의 책임은 더 큽니다. 더구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규제를 위한 임대차 3법을 통과시킬 때 보여준 일사불란함을 염두에 두면, 논란이 되는 낙태죄 관련 법 개정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법안의 개정을 방치한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헌재에 따르면 지금까지 헌재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로 결정했지만, 개정이 되지 않은 법안은 44건에 달합니다. 제일 오래된 법은 국가보안법입니다. 헌재가 1992년 4월 위헌 결정을 내린 국가보안법 제19조는 피의자의 구속 기간을 최대 50일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한 조항입니다. 당시 헌재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후 29년이 지났지만, 국회에서는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약사만 약국 개설을 가능하도록 한 약사법 제16조 1항 역시 2002년 9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개정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헌재는 당시 법인을 구성해 약국을 개설하려는 약사들의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요. 지난 정부에서는 헌재 결정을 근거로 '법인약국', '기업약국'을 허용하려고 했지만, 약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습니다. 국회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