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진영정치 시대, 재조명 받는 '닉슨 세 장면'

'29세 정치신인' 바이든
소속 당 달랐지만 "큰 인물" 격려

1960년 대선 케네디에 졌지만
편파보도·선거부정 등 논란
품격의 정치로 8년 뒤 재기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20일(현지시간)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조 바이든(78·민주당)이 정치인생에서 첫 번째로 꼽는 순간이 있다. 만 29세의 나이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였던 1972년 12월 19일이다. 첫 아내 네일리아와 한 살배기 딸 나오미가 전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차를 탔던 세 살과 두 살짜리 아들(보, 헌터)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날벼락 같은 사고에 비통해하던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공화당)의 전화였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곳 백악관의 모든 사람이 당신과 슬픔을 같이하고 있고, 당신과 두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백악관 일일보고에 들어 있던 바이든 상원의원 당선인 가족의 사고소식을 읽자마자 건 전화였다. 닉슨은 아들 또래였던 바이든에게 “당신의 아내가 하늘에서 당신을 쭉 지켜볼 것”이라며 “젊음이라는 큰 자산을 가진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바이든은 한 달 전 선거에서 델라웨어주에 출마해 닉슨의 동지이자 현역 상원의원이었던 공화당의 캘럽 보그스를 꺾으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같이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은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승리했고, 델라웨어주에서는 20%포인트 차의 압승을 거둔 터였다. “이 친구 대단하군. 내가 보그스 지원유세를 했더라도 기세를 꺾긴 어려웠을 거야.” 닉슨은 공화당 아성에서 돌풍을 일으킨 젊은 바이든을 측근들에게 이렇게 칭찬했다. 소속 정당을 뛰어넘은 격려였다.

그런 닉슨이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진영(陣營)정치’로 인한 좌절의 뼈아픈 기억이 많았다. 1953년부터 8년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닉슨은 1960년 11월 대통령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경쟁 상대는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였다. 대선 후보 간 첫 TV토론이 열린 9월 26일, 방송을 주관한 친(親)민주당 성향 CBS는 무릎 수술을 받은 닉슨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선 채로 토론하도록 했다. 그가 땀을 많이 흘린다는 것을 알고 스튜디오 온도를 높였다. 카메라감독은 땀을 흘리는 닉슨을 클로즈업한 반면, 케네디는 젊고 깔끔하며 활기 넘치는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CBS의 노골적인 편파 행태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닉슨은 “극복해야 할 선거 과정의 일부”라고 다독였다.

훨씬 더 기막힌 일이 6주일 뒤 대통령선거 투·개표 과정에서 벌어졌다. 케네디가 접전 끝에 당선된 것으로 발표됐지만, 일부 지역에서 명백한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었던 시카고(일리노이주)에서는 케네디에게 투표한 사람들 명부에서 사망자가 다수 발견됐다. 언론의 추적보도가 잇따랐고 연방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감싸던 주류 언론의 외면과 검찰 일각의 지연작전에 말려 수사가 잘 진척되지 않았다. 공화·민주 양당 지지자들의 대립이 격렬해졌고, 자칫 미국 사회가 두 동강 날 위기에 빠졌다.닉슨이 결단을 내렸다. “시비를 가려낼 시간이 부족하다. 미국이 대통령 공백 상태를 맞게 할 수는 없다.” 닉슨은 당시 유력 신문이었던 뉴욕헤럴드트리뷴 기자에게 더 이상 부정선거 추적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직접 요청했고, 연방검찰총장에게는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공화당 소속이었던 일리노이 주지사에게는 케네디 승리를 선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1961년 1월 3일, 새 대통령 당선을 확정짓는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현직 부통령으로 상원의장을 겸직하고 있던 닉슨이 의장석에 앉아 “케네디의 35대 미국 대통령 당선 확정”을 선포했다. 닉슨의 이런 모습에 민주당이 되레 당황했다. 1968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닉슨과 대결한 휴버트 험프리를 비롯해 마이크 맨스필드 등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당에 쓴소리를 하고 닉슨에게 찬사를 보냈다. “명백한 투·개표 사기 행위가 있었음을 민주당은 인정해야 한다. 닉슨의 깊은 사려와 당당함, 높은 품격에 더할 수 없는 존경을 표한다.” 8년 뒤 대선에 재도전해 3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사임하는 오점을 남겼지만, 미국 헌정사에 남긴 그의 공(功)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요즘 미국 정계에서 그 얘기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