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으면 대부업체도 외면하는 시대 [박종서의 금융형통]

대부업계 1위의 기업을 키워낸 모 회장은 “대부업의 본질이 택시회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택시가 지하철보다 비싼 것을 누가 모르나. 급하니까, 편하니까 타는 것이다. 대부업체도 마찬가지다. 은행 금리가 싸다는 걸 누가 모르나. ‘은행 문’이 멀리 있으니까 찾는다.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다. 택시를 타고 땅끝마을까지 가는 사람도 없고, 대부회사에서 십수년씩 돈을 빌리는 사람도 없다. 택시와 대부회사는 그래서 업(業)의 본질이 같다. 빠르고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성공한다.”

대부업 기사를 쓸 때면 그 회장의 발언이 종종 생각이 납니다. “대부업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금리는 두 번째 문제”라는 말이지요. 바빠서 택시를 타겠다는 사람에게 10분쯤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고 5분쯤 더 기다리면 버스가 올 것이라고 말해준다면 크게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대부업체들은 돈을 빌리는 사람들 99.9%에게 연 20~24%의 이자를 내도록 합니다. 그 회장이 자기의 생각을 TV광고로 만들었다가 고금리 대출의 경각심을 떨어트릴 수 있다며 지탄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2013년만 하더라도 최고금리가 연 39%에 이르렀습니다. ‘택시같은 서비스’로 돈을 버는 금융회사는 대부업체뿐만 아닙니다. 2금융권으로 부르는 신용카드회사와 캐피털회사, 저축은행 모두 그렇습니다.

카드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여신금융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현금서비스(단기카드대출)의 경우 신용 1~3등급에 물리는 금리가 연 10%를 넘습니다. 하나카드가 10.14%로 가장 낮았고 우리카드가 15.69%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만 금리를 비교하면서 주의해야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카드를 착한 회사, 우리카드를 나쁜 회사로 해석하면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카드사마다 공략하는 신용등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카드사는 신용 1~3등급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자를 받고, 어떤 카드사는 6등급에 우대금리를 줍니다. 1~3등급만 놓고보면 연 5%포인트 이상의 금리차가 있지만 카드회사별 평균금리가 연 18.57~19.20%로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금서비스 금리를 비교하면서 모 카드사가 ‘악독하게 돈을 더 받아 먹는다’는 식의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신금융협회 공시정보포털에 금리가 나와있으니 자기 신용등급에 따라 유리한 카드사를 선택하라고 안내합니다. 우리카드는 신용 1~3등급에게 가장 비싼 이자를 받지만 6등급 중에서는 가장 낮은 이자를 받고 있습니다.
고금리 금융시장을 놓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한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얼마전 금융감독원에서 대부업과 관련해 의미있는 통계가 하나 나왔고 18일에는 금융위원회의 정책까지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은 해마다 두 번씩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2020년 상반기 자료는 지난달 30일 나왔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대출잔액이 지난해 상반기말 기준으로 15조원이었습니다. 대부업 이용자수는 157만명이었고,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은 955만원이었습니다.

여러 수치 가운데 저의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신용대출 부문이었습니다. 대부업체가 담보없이 신용으로만 빌려준 돈이 최근 2년간 40% 가까이 줄어든 7조8502억원이었습니다.

대부업 전체 대출에서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52.1%)이 절반을 겨우 넘었습니다. 2017년말에는 신용대출 비중이 76.3%에 달했습니다. 금감원은 “대형 대부업자의 대출심사 강화와 신규 영업 중단”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반면 주택 등 부동산을 잡고 돈을 빌려주는 담보대출은 2017년말 3조8988억에서 2020년 6월말에는 7조1929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대부업체도 이제 ‘급전 대출’은 손 떼고, 주택담보대출로 옮겨탔다는 의미입니다.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18년 2월 법정 최고 금리가 연 27.9%에서 연 24%로 떨어졌습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최고금리 수준을 고려할 때 지금 수준에서는 신용대출을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반기에 최고금리가 연 20%까지 떨어지면 담보대출에 집중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제 집이나 부동산 등 마땅한 담보가 없으면 대부업체에서도 급전을 빌리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최고금리 인하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금융위원회는 최고금리를 연 27.9%에서 연 3.9%포인트를 낮췄더니 114만명이 연간 3400억원의 이자 부담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빌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저리·고정금리 대환상품을 공급해 24만명에게 3100억원의 이자를 덜 내도록 했다고 합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택시’가 많이 사라졌고 앞으로 더욱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얘기지요. 최고금리 인하는 대부업체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사와 캐피털사, 저축은행의 신용대출까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급해서, 은행 문턱이 높아서 ‘금융시장의 택시’를 타려고 했던 사람들은 지금만큼 탑승 기회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연 27.9%였던 최고 금리가 연 3.9%포인트 하락한 2018년 2월 이후 4만~5만명(대출액 기준 3000억~3500억원)이 불법사금융 시장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부도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책을 내놨습니다. 최고금리 인하에 맞춰 햇살론17(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저신용자들에게 연 17.9%로 대출) 금리를 낮추고, 연 20% 초과 대출에 대해 대환상품의 한시적 공급을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안정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등 모든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걷기로 했습니다. 금융회사들에게 중금리대출을 유도하는 방안도 발표했습니다. 서민대출 우수 대부업체 등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합니다. 정부의 대책이 시장에서 잘 먹혀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서민들이 고금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최고금리 인하의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하는데 기우이길 바랍니다.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