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객뺏기 지금이 기회"…TSMC 회장 나섰다

현장에서

파운드리 '3나노 경쟁' 돌입
TSMC, 퀄컴·엔비디아 유치나서

'총수 공백'에 막막한 삼성
대규모 기술개발 투자 차질

황정수 기자
고객사의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를 생산·납품하는 ‘파운드리’는 반도체 사업의 ‘종합예술’로 불린다. 고객 설계에 가치를 더하는 기술력은 기본이고 적시에 조(兆)단위 설비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경영진의 혜안과 결단도 필수다. 대형 고객사를 끌어올 수 있는 네트워크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파운드리 업력 15년의 삼성전자가 35년간 한우물을 판 TSMC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건 기술·투자·네트워크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선폭(전자가 이동하는 트랜지스터 게이트의 폭) 3㎚(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을 개발 중이다. 현재 두 회사의 주력 공정은 7㎚와 5㎚인데 선폭이 좁아질수록 더 작고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다. 제품 양산 1~2년 전부터 파운드리업체가 고객사를 미리 확보하고 기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 상반기는 삼성전자에 놓쳐서는 안 될 ‘수주 골든타임’으로 평가된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은 삼성 파운드리사업에 ‘메가톤급 타격’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에 대한 결단은 물론이고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수주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상 신호는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중국, 대만 소식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되는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9일 시장조사업체 IDC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애플뿐만 아니라 퀄컴과 엔비디아가 내년 하반기 가동하는 TSMC 3㎚ 공정의 고객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퀄컴과 엔비디아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핵심 고객사다. 삼성전자는 ‘고객사의 움직임은 알 수 없고 확인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란 평가가 우세하다.

TSMC는 회장이 직접 뛰며 3㎚ 고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최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3㎚ 공정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성능컴퓨팅(HPC)업체와 스마트폰 칩 팹리스(설계전문업체)들과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TSMC가 올해 시설투자에 역대 최대 규모인 30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3㎚ 공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평가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TSMC는 삼성과의 격차를 벌릴 ‘천재일우의 기회’를 갖게 됐다”며 “이 부회장의 부재는 TSMC 추격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삼성전자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