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빌리자고 월 1000만원씩 갚아야 하나"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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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출 원금분할 상환 예고“1억원을 빌리면 매달 1000만원씩 갚아야 하나요?”
'빚투' 잡으려다 서민 잡을라
정소람 금융부 기자 ram@hankyung.com
금융위원회가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원금분할상환 제도 도입을 예고한 지난 19일 각종 포털 사이트마다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대출 첫달부터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함께 갚아야 하기 때문에 매달 내야 할 원리금 부담이 폭증하는 탓이다.
금융위는 ‘빚투’(빚내서 투자) 행위를 차단해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금을 분할해 갚아나가야 한다면 고액 신용대출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5년 기준 신용대출의 원리금 변동 내용 예시가 나왔다. 연 3% 금리에 5년 만기로 1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면 지금은 한 달에 25만원씩 이자만 내고 5년 뒤 1억원을 상환하면 되지만 앞으로는 5년간 매달 179만6869원(원리금 균등상환)을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다.그러나 5년 단위 계산법은 실제 대출 시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금융권 얘기다. 신용대출은 보통 1년 단위로 받기 때문이다.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 역시 1년을 사용한 뒤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으로 계좌를 유지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제 영업점에서 5년 만기 신용대출이 나가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 1년짜리 대출을 한 뒤 만기에 원금을 일시 상환하거나 계약을 연장한다”고 설명했다.
연 3% 금리에 1년 만기로 1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해봤다. 한 달에 원금을 포함해 858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만약 신용등급이 낮아 더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다면, 한 달에 1000만원씩 대출금을 갚아야 할 수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 정도 원리금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출을 뭐하러 받겠느냐”며 “대부분 자신의 이자 상환 능력을 고려해 신용대출을 받아놨을 텐데 현장의 혼선이 커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용이 아닌 대출을 받는 실수요자들이 애꿎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영업자들은 일시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신용대출로 우선 충당하고 몇 개월 뒤 상환하는 일이 많다. 경제적 이유로 생활자금을 신용대출로 끌어당겨 쓰는 서민층도 상당하다.
새 제도가 보편적으로 적용되면 이들은 대출을 포기하거나, 대출 후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려는 정책이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셈이다. 빚투를 차단하겠다고 너무 급발진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시장의 불필요한 혼선을 줄이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