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행 오피스 빌딩 대출 조여라"…與, 금융당국 압박

김진표 의장 "상업용 부동산 여신 모니터링 필요"
업계 "시장 논리 왜곡…해외 자본 이익 볼 수도"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22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K뉴딜 지원방안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에 오피스 빌딩 관련 은행 대출을 모니터링해 줄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은행의 여신 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금융계는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상업용 부동산에도 강력한 대출 규제가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빌딩 대신 뉴딜 지원해야"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 윤관석 정무위원장 등 여당 의원들은 22일 은행연합회관에서 5대 금융지주회장과 간담회를 열고 오피스 빌딩에 대한 투자를 자제하는 대신 K뉴딜과 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김 의장은 “코로나19로 전국 공실률이 높아졌는데 여의도 대형빌딩 가격은 25~35% 상승했다”며 “중국은 대형은행에 부동산 금융을 총 자산 40% 이하로 제한하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상업용 부동산에 나가는 은행 대출 추이를 관리해줄 것을 금감원 측에 요청하겠다는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기업등이 오피스 빌딩을 살 때 은행은 시가의 50~75% 수준에서 대출을 해준다. 1000억짜리 건물을 사면 최대 750억원 가량 대출로 조달 해 온 셈이다.

이날 회의에선 부동산 가격 상승 때 벌어지는 리스크 요인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부동산 값이 오른 채 매각되면 대출 총량이 늘고, 실물 경기가 나빠 부동산의 캡레이트(투자금 대비 수익률)이 낮은 가운데 부실화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선 정부 여당이 이익공유제와 배당압박 등에 이어 부동산 대출에 대해서도 간섭을 강화한다는 게 불만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 오피스빌딩 시장은 주택과 달리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리스크가 낮다”며 “부동산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시장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시장 왜곡이 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은행에 제시할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부동산 여신 리스크를 점검한다는 명목상의 이유를 내걸고 담보인정비율(LTV) 등을 제한하는 방안이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내주는 은행과 보험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비롯해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부동산 금융업계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우리도 중국처럼 규제해야”

이날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사례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이달 초 부동산 버블 우려가 심해지자 주요 도시에서 은행이 취급하는 부동산 담보대출의 전체 자산의 40% 수준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은행의 규모가 작으면 개인 부동산 대출 자산 비중을 더 낮추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내에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같은 초강력 부동산 규제가 도입될 수 있다는 뷴석도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이제 주택 LTV 규제와 마찬가지로 상업용 빌딩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대출 규제가 도입됨다면 은행으로선 소비자에게 받은 예금을 굴리는 ‘자산운용’에 또다른 제약조건이 생기는 셈이 된다. 현재 은행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LTV 60% 전후의 대출을 내주고 있다. 부동산의 종류와 위치, 투자자의 신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얼마나 대출을 내줄 지 정하고, 금리도 책정한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회의가 끝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은행마다 리스크 관리를 강하게 하고 있고, 부동산 부문 익스포저(비중)는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기간과 목표수익률이 제각기 다른 금융회사들이 대출채권을 매입(대출 실행)하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제약이 은행에만 도입되면 은행으로선 안정적인 이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대상이 하나 없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자본이 반사 이익 볼 수도"

은행권 뿐 아니라 금융권 전반에 후폭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주택과 달리 보험사, 저축은행, 증권사 등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건물 대신 한국판 뉴딜에 돈을 쓰라’는 순진한 생각대로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리스크가 큰 다른 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부동산전문 운용사의 리서치 센터장은 “은행 대출이 안된다면 보험사와 2금융사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것이고, 리스크가 더 큰 물류창고로 돈이 몰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용 부동산의 주요 투자자인 연기금과 공제회 등의 회원이 국민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무지한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연기금이 오피스빌딩에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려 회원들에게 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시장이 위축되면 피해는 국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규제를 덜 받는 외국 자본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부동산 자산운용사의 대표는 “연기금과 공제회 은행이 참여하는 부동산 금융시장이 발달하기 전 강남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빌딩) 등이 해외 자본에 팔려 막대한 돈을 벌어간 전례가 있다”며 “어설픈 생각으로 개입했다간 주택정책보다 더 큰 후폭풍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소람/김대훈/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