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주조품보다 뛰어난 비파형 동검·청동거울…원조선의 정교한 합금·주조 기술 당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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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한국은 많은 나라가 선망하는 국가다. ‘한류’는 선진국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50년 만에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 산업화와 부국강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산업이 발전하고,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나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대 산업’에 대한 오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신과 저평가, 역사학자들의 편협함 때문에 이를 잘 알지 못한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34) 원조선 금속산업과 기술력
베이징 근처에서도 발견된 원조선 유물들
원조선은 어떤 종류의 산업이 발달했으며, 기술력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농업과 어업, 임업, 목축업 등 1차 산업과 성을 쌓고 도로를 닦고 거대한 고분 및 고인돌을 만드는 토목업, 조선업 등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그런데 기술력의 정수, 응용 범위의 확장, 기타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 화공(化工)을 이용한 요업(세라믹)과 금속을 이용한 군수산업, 제사산업이 핵심이었다.원조선 전기는 청동기 문화가 발달한 시기였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連) 근처의 강상무덤(崗上墓)과 루상무덤(樓上墓), 요하(遼河) 동쪽 지방인 요동의 정가와자 무덤들(선양 정가와자에 있는 유적), 요서의 십이대영자 무덤 등에서는 청동 단검, 청동 도끼, 청동 끌, 청동 화살촉, 수레 부속품, 마구류, 단추 등 각종 청동 제품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 가운데 원조선의 금속산업과 기술력을 알려주는 유물은 상징성이 강하고, 기능성이 높으며, 난도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비파형 동검(고조선식 동검 또는 요녕식 동검)과 청동거울(잔무늬 거울, 거친무늬 거울)이다.고대사회에서 칼은 무기로 기능했고 정치력을 의미했으며, 상징성도 강했다. 특히 비파형 동검은 특별한 형태와 표방한 논리로 인해 더욱 중요했다. 기원전 11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제작됐는데, 서쪽은 요하를 지나 베이징 근처와 산둥지역, 북쪽은 네이멍구 남부지역과 북만주, 동쪽은 연해주 일대, 남쪽은 한반도 전 지역, 바다 건너 일본 규슈 지방 등에서 200개 이상이 발견됐다. 하급 무사의 무덤에서도 나온 걸 보면 대량으로 생산됐을 것이다.
살상력 뛰어난 비파형 동검
비파 모양의 신비한 형태와 유려한 선, 맑고 환한 색이 어우러진 독특한 미학 때문에 제사용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그런데 직접 제작해 실험한 결과 살상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손가락을 날에 대는 찰나 베일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길이가 30~35㎝ 정도인데, 사상성과 실용성을 고려해 검신과 검자루 및 검자루 맞추개를 따로 만든 ‘3단 조립식 검’이다. 따라서 중국이나 북방 유목종족의 통짜 주조품과 달리 뛰어나고 정교한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원조선 후기에 사용된 세형 동검(한국식 동검, 좁은 놋단검)은 길이가 보통 30㎝ 정도인데, 형태가 다소 투박하고 손잡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짧다. 미(美)의식이 부족한 것은 이미 철기시대였으므로 기능성에 비중을 둔 탓이지 기술력이 퇴보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대량 생산된 세형 동검들은 날이 예리하고, 반들반들할 정도로 우수했다. 한반도 전역에서 놋창·놋과·청동제 고리 등을 제작했으며, 일부는 일본 열도로 수출하거나 기술 이전을 통해 현지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