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게임인] 프로게이머가 "김치녀" 욕설…징계할 일일까?

오버워치 전설 류제홍, 여성혐오 욕설 남발에 소속사가 근신 처분
법조계·학계, e스포츠 선수·스트리머도 공인으로 분류하는 추세
"여성혐오가 젠더 갈등 심화…'남성혐오도 문제' 주장은 무의미"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류제홍(30) 씨가 인터넷 방송 중 여성 스트리머에게 "김치 X(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욕설을 했다가 소속사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았다. 남초(男超)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스트리머도 함께 "김치 새X"라며 욕설을 했는데 류씨가 과한 징계를 당했다며 소속사를 비판하고 있다.

e스포츠 선수의 욕설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는지, '김치녀(女)'라는 표현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에 관해 온라인에서 여러 말이 나온다.

◇ 술먹방하며 여성혐오 욕설 즐긴 오버워치 레전드…젠지 COO "매우 실망"
류씨는 오버워치 등 1인칭 슈팅게임(FPS) 쪽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다. 올해 '젠지 e스포츠'와 스트리머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이달 15일 개인 방송을 하면서 여성 스트리머 '해기'(채널명 해기님)와 원격 술먹방(술을 마시면서 방송하는 것)을 했다.

이때 류씨는 해기와 장난을 치면서 '김치 X(여성 비하 표현)' 등 여러 욕설을 썼다. 심한 욕설로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논란이 일자 류씨는 18∼19일 두 차례 사과문을 내 "수위가 센 발언과 욕을 남발한 것에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들께 사과드린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잠잠해지는 듯했던 논란은 20일 젠지 e스포츠의 아놀드 허 최고운영책임자(COO·한국 지사장)가 "류제홍의 팀 관련 활동을 모두 중단시킨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점화했다.

허 COO는 "제홍이 방송에서 사용한 언어에 매우 실망했다. 그는 잘못했다"면서 "우리(젠지)는 선수든 스트리머든 (e스포츠) 플랫폼에 있는 사람은 높은 기준의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고 처분 이유를 밝혔다.

남초 팬덤에서는 해기가 '김치 X'이라는 욕설에 김치를 가져와 먹으면서 장난으로 받아쳤고, 해기도 류씨에게 "김치 새X"라고 욕을 했다며 젠지가 류씨에게 과한 처분을 내렸다고 반발했다.
◇ 스포츠 선수·인터넷 방송인은 공인일까…그렇다는 판례 느는 추세
류씨는 개인 방송에서 욕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일까?
이 질문은 e스포츠 선수가 '공인'(公人) 이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e스포츠 선수는 대중에게 미칠 영향력을 생각해 언행을 조심해야 할 공인일까?
법적으로 따지면 아직 명쾌한 정답은 없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해 '공인이란 누구인가?' 논문에서 "공인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며 "공인의 범주를 명확히 정한 공적 기준이나 자료도 드물다"고 지적했다.

우리 법원이 현재까지 가장 구체적으로 내놓은 공인의 정의에는 스포츠 선수가 포함된다.

2014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이 '공직자,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 범인 및 피의자' 등이 공인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보수 유튜버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인터넷 방송인도 언론인·공인의 성격을 지닌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종합하면, 최근 하급심 판례는 스포츠 선수와 유튜버·스트리머를 공인으로 분류하는 추세다.

체육계에서는 스포츠 선수가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고려대 연구진은 '운동선수는 왜 도덕적으로 보여야 하는가?' 논문에서 "스포츠 스타는 청소년에게 현대의 영웅"이라며 "청소년이 운동선수의 행동·태도를 모방하므로 선수는 공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교육부가 조사해보니 초등학생 장래 희망 직업 3위가 유튜버·스트리머 등 크리에이터, 6위가 e스포츠 선수였다.

남학생은 2위가 크리에이터, 3위가 e스포츠 선수였다.
◇ '김치녀'와 '김치남'은 대등한 혐오 표현일까
류씨가 즐겨 쓴 '김치녀'라는 표현은 왜 문제일까?
김치녀는 남초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가 만들고 '일간베스트 저장소'가 퍼뜨린 대표적인 여성혐오 표현이다.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은 2013년 진보평론에 기고한 '일베와 여성혐오'에서 "'된장녀'처럼 일부 여성을 향하던 혐오가 한국 여성 전체로 확장된 것이 '김치녀'"라고 분석했다.

2000년대 초반 젊은 여성이 소비와 경제의 주체로 부상하고 결혼·출산은 유예하자 '된장녀'라는 혐오 표현이 나왔는데, 2010년대 들어 일베가 생기고 혐오 언어가 커지자 그 대상도 한국 여성 전체로 넓어졌다는 것이다.

김치녀 같은 혐오 표현은 여성 차별·혐오를 재생산하고 유희화할 뿐 아니라, 성별 갈등이라는 악순환도 야기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표현' 논문에서 "한국 여성 전반이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성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남성은 여전히 자신이 가장인 줄 아는데 사회 변화로 취업·성공도 어렵고 가부장제적 가정 설계도 어려워지자, 이런 현실을 여성 탓으로 돌리면서 '김치녀' 같은 표현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류씨 욕설에 여성 스트리머도 '김치 새X'라고 받아쳤으니 '남성 혐오'를 한 것 아닐까?
전문가들은 '김치남(男)'이 혐오 표현이 되려면 한국에 남성 전체를 향한 사회적 차별·혐오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므로 '김치녀'와 '김치남'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 표현의) 핵심은 '차별을 재생산하는지'의 여부"라며 "남성과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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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