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정인이 신고자 노출했나…양모 "양천경찰서에 지인 있다"

"아동학대는 비밀유지가 필수입니다. 이는 신고자를 보호하고 제대로 된 수사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와 핑계 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 발언 중)"경찰 측이 16개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정보공개 요청에 비밀유지를 이유로 거부하는 상황에서 정인이 양모 장모 씨가 "양천경찰서에 지인이 있다"면서 "신고자를 찾아내 무고죄로 고소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정인이는 지난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으며 어린이집 교사들은 5월 25일 아이 허벅지와 배 부분 다수의 멍을 발견하고 1차 학대 신고했다.
사망 전 어린이집 CCTV에 포착된 정인이 모습.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볼 뿐 움직임이 전혀 없는 모습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오다리 교정하기 위한 마사지였다"는 양부모의 해명을 믿었으며 경찰 또한 "의심되는 정황이 없다"면서 사건을 종결시켰다.경찰 보고서에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멍도 생긴다"며 오히려 양부모를 두둔하는 모습이 담겼다.

더욱 큰 문제는 정인이가 차 안에 방치돼 있는 것을 목격한 지인의 2차 신고였다.

지난해 6월 양부모가 정인이를 차에 방치해 둔 걸 목격한 신고자는 고심 끝에 이를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알렸다.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신고접수를 받고 양부모를 만났는데 (학대 의혹을) 부인했다. 수사의뢰를 했다"고 전했다
정인이가 차에 방치된 채 발견된 곳은 양모가 첫째딸을 데려간 미술학원 부근이다.

당연히 사건 당시 CCTV를 확인했다면 정인이가 방치돼 있던 구체적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하지만 미술학원 원장은 "경찰이 찾아온 것은 한 달이 지난 뒤였다"면서 "건물 CCTV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증거는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이 국회에 제출한 서류를 보면 경찰은 사건 발생 장소를 찾는데 14일이나 소요했다.

경찰 측은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사건 발생 장소 등을 알려줘야 하는데 아동보호기관에서 사건 발생정보를 구체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신고자 정보를 알려주기를 원치 않았다"고 떠넘겼다.
2차 신고자는 이 내막을 전해듣고 황당해 했다. "발생장소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면서 저를 내세우진 말아달라"고 당부했다는 것.

하지만 2차 신고자의 신원을 경찰이 노출했다는 의혹이 담긴 메시지 내용이 이날 공개됐다.

정인이 양모는 자신이 신고당한 것을 알고 지인이었던 2차 신고자에게 "양천경찰서에 지인이 있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알려줄 수 있대요"라며 "찾아내서 무고죄로 신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메시지에는 "왜 그랬어요?"라는 원망이 담겼다.

아동학대 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신고자의 신원을 유출한 것이 사실이라면 경찰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2일 방송된 '정인이 방송' 논란 이후 대안에 대해 제시했다.

특히 3번의 학대 의심 신고 접수에도 불구하고 정인이를 구할 수 없었던 구체적인 원인을 심층 분석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정인이 사건을 '월정로의 비극'이라 칭하며 월정로를 경계로 양천경찰서와 강서경찰서 관할지역이 달랐던 점을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정인이의 학대 정황을 기록해오고 병원에 데려갔던 어린이집과 3차 신고 소아과는 강서경찰서 관할지역이었던 데 반해 아동학대 사건은 양부모의 주소지인 양천경찰서에서 담당해야 했던 현실이 드러났다.

국회는 아동학대범죄 처벌특례법 개정안인 일명 '정인이법'을 방송 6일 만에 통과시켰다. 사건을 관할했던 양천경찰서장에게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지는 등 수사 담당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이어졌고, 경찰청장도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게 됐다.

법원에는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탄원서가 쇄도했고, 검찰 또한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신고 처리 과정을 들여다보면, '법'이 없어서 정인이를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법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정인이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법제정에 만족하지 말고 인력투입과 예산 확보를 통해 시스템을 갖춰 나가는데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