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홍남기, 옳은 얘기 했다

박준동 경제부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같이 일해 본 공무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부드러운 사람으로 평가한다. 갈등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준다고 한다. 이헌재 전 부총리나 윤증현 전 장관 같은 카리스마는 없는 게 사실이다.

홍 부총리는 이런 이유로 ‘예스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을 지낸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에 발탁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홍 부총리는 현 정부에서 스타일대로 일을 해 왔다. 부동산 규제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을 묵묵히 수행했다. 자신의 경제 철학과 부합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정권에 맞춰 업무를 했다.

정치권의 돈풀기 요구에 반대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소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기도 했다.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의 기준을 당초 계획대로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자고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는 앙숙에 가깝다. 이 지사가 주장하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홍 부총리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 지사가 “경제관료로서 자질 부족을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고 하자 홍 부총리는 “사소한 지적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홍 부총리는 이번에 정세균 국무총리와 붙었다. 정 총리가 기재부를 대놓고 공격한 직후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자영업 손실보상제’에 신중론을 펴자 정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개혁엔 항상 반대·저항세력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재정부는 나라 곳간지기다. 국민이 부여한 의무이며 소명이다”는 말로 무차별 돈풀기에 반대했다.

홍 부총리의 얘기는 100% 옳은 소리다. 기재부 수장이 해야 할 말이고 할 일이다. 기재부 공무원의 의무는 국가재정법에 규정돼 있다. 1조에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라”고 돼 있다. 16조에선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헌법에선 정치권도 ‘나라 곳간 지킴이’를 존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한 57조가 그 조항이다.

부하 지키기 만족해선 안돼

김 차관도 해야 할 얘기를 잘하긴 했다. “자영업 손실 보상을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법제화보다는 신속하고 탄력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했다. 김 차관이 정 총리의 질타를 받은 뒤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이 잘못된 것이다.

홍 부총리가 상관인 총리에게까지 ‘바른 소리’를 한 것은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채무는 1년에 100조원씩 늘어난다. 작년 11월 말 기준 826조원인 중앙정부 채무 총액은 내년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국가채무비율도 몇 년 내 60%를 웃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실을 본 사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재정을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 우려도 있다.

홍 부총리의 이번 반기는 ‘부하 지키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쳐선 안 된다. 자신이 말한, 더 큰 소명을 위해야 한다. 이는 결코 자리에 연연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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