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산업지능] MIT의 모토는 왜 '머리와 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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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갇혀 산업현장으로 확산 않는 과학기술지난 5일 KAIST의 BK21 첨단 디지털 제조 인재양성 사업단과 한국폴리텍대 간 교육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행사가 열렸다. KAIST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선도할 공학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며, 한국폴리텍은 전국 35개 캠퍼스를 거느린 현장 기술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한 기관이다. 두 기관이 상호 협력을 공식적으로 도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학을 구현하는 기술'을 앞세우는 MIT처럼
지식 흐름의 물꼬 터 혁신의 실마리 되게 해야
장영재 <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
과거에는 새로운 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전화기는 1870년대 등장했지만 실제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가정용 전화기가 보급된 시기는 1930년께다. 개발에서 상용화되기까지 반세기 넘게 걸린 셈이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이 탄생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까지는 5년이면 충분했다.최근 인공지능(AI) 분야의 새로운 부활을 선도한 기술은 딥러닝이라고 불리는 심층신경망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13년 공학계에서 그 효용성을 입증받은 직후 거대한 AI 기반 기술 혁신의 쓰나미를 몰고왔다. 현재 AI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가전제품과 서비스가 출시·활용되고 있다. 2016년 이세돌과 대국으로 파란을 일으킨 ‘알파고’에 적용된 강화학습이란 AI 방식은 일부 스마트공장에 도입돼 공장 운영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기술이 등장해 산업에 활용되기까지 시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술을 창조하는 공학기관과 기술을 산업에 적용하는 기술 인력 양성 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 없이는 산업 혁신이 불가능하다. KAIST와 한국폴리텍의 협력이 의미가 있는 이유다.
공학의 핵심은 이론을 기반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의 창조, 즉 디자인(design 또는 creation)에 있고 기술(technology)은 이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학이 기반이 돼 기술이 창조되기도 하고 기술의 탄생으로 공학이 정립되기도 한다. 기술 창조와 활용의 시차가 줄어들수록 공학과 기술의 경계는 사라진다. 공학 발전을 위해서라도 우아한 상아탑을 나와 기술과 산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다. 반대로 공학의 근본을 이해해야 기술 발전과 확산이 가능하다.
KAIST와 한국폴리텍의 협업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산업 기술의 흐름을 함께 만든다는 점이다. 국내 대부분의 연구중심대학 교원 평가는 해외 학회 활동과 논문 편수 위주다. 세계 석학들과 협업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해외 학술 활동은 당연하다. 그러나 해외 학술 활동에만 매몰돼 국내 산업의 지식 확산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큰 문제다.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과 중국만 해도 자국 학회 육성과 기술의 사회적 보급 및 전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기관과 공학자들에게 자국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학자들 간 정보 교환을 위한 학술논문부터, 일반 산업에 기술을 전달하기 위한 기술서, 그리고 대중기술서까지 다양한 문서를 통해 지식 전달이 이뤄지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국내 상황은 암담하다. 첨단기술 관련 국내 서적과 산업계 인력을 위한 기술 자료는 수준을 논하기는커녕 거의 없는 형편이다. 국내 우수 연구진이 기술을 창출해도 대부분 영미권 저널에만 소개되고 이런 기술 지식이 국내 산업으로 유입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 기업이 이런 지식 습득에 목말라하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지식의 흐름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의 단절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 심지어 대기업군에 속하는 기업들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기업의 기술 수준은 상아탑 안에서 다루던 기술과 비교하면 그 수준이 낮아 충격적이다. 학계에서는 해결점이 제시된 기술인데도 현장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상당하다.
기술 지식이 각 산업계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물꼬를 트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국내 4대 과학기술원이 중소기업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센터를 개소했다. 미국 MIT의 모토는 라틴어 ‘Mens et Manus’이다. 직역하면 ‘머리와 손’이며 이는 ‘창조하는 공학(머리)을 구현하는 기술(손)’을 의미한다. 즉 공학과 기술이 한몸을 이루지 않으면 기술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산업 지능의 확산을 위해서는 머리와 손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