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m 극적 '홀핥기' 버디…김시우, 3년8개월 침묵 깨고 우승 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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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23언더 정상25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종 4라운드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파72). 22언더파로 공동 선두를 달리던 김시우(26)가 친 티 샷이 홀에서 약 5m에 섰다. 마지막 차례였던 그는 같은 조 선수들의 퍼팅을 유심히 지켜본 뒤 공을 굴렸다. 퍼터 헤드를 떠난 공은 홀 왼쪽을 살짝 훑더니 홀 안으로 사라졌다. 23언더파 단독 선두. 허공에 어퍼컷을 날린 김시우의 포효가 17번홀(파3)에 울려 퍼졌다.
한국인 최연소 투어 통산 3승
한국인 소유 골프장 첫 우승 기록
누적상금 1300만弗 한국 선수 2위
김시우는 이 퍼트를 앞세워 3년8개월간의 긴 침묵을 깨고 PGA투어 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날 버디만 8개를 잡아 8언더파를 몰아쳤다. 최종 합계 23언더파 265타. 2위 패트릭 캔틀레이(29·미국)와는 불과 1타 차였다. 2017년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투어 통산 세 번째 우승이다. 총상금 670만달러 가운데 우승상금 120만6000달러(약 13억2000만원)도 그의 몫이 됐다. 오는 4월 열리는 마스터스 출전권도 덤으로 받았다.
알카트라즈의 악몽, 버디로 설욕
이날 승부처였던 17번홀의 별칭은 ‘알카트라즈’다.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곳으로 유명한 알카트라즈섬 감옥에서 따왔다. 그만큼 선수들이 쉽게 지나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홀인 이곳은 각진 돌들이 둘러싸고 있다. 홀 그린 바로 앞에는 깊은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다. 벙커를 피해도 솟아 있는 그린 주변의 가파른 경사 때문에 샷이 조금만 짧아도 공이 물에 빠진다.김시우가 지난해 이 대회 1라운드에서 87타를 치고 기권했을 땐 이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적어냈다. 올해 1라운드에선 버디를 잡았지만 2라운드 땐 보기를 범해 벌어놓은 타수를 반납한 뒤 탈출할 수 있었다.한 번의 실수로 우승을 날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김시우는 다시 한 번 알카트라즈와 마주했고 결국 버디로 악연을 정리했다. 김시우는 경기 후 “(17번홀에서) 실수하지 않고 최소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상대 선수들의 퍼트를 참고한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도 두 번만에 공을 그린 위에 올린 뒤 침착하게 두 번의 퍼트로 파를 잡아내 우승을 확정했다.
최경주 이어 한국 선수 다승 2위
이번 우승으로 김시우는 PGA투어 한국 선수 다승 부문에서 8승의 최경주에 이어 단독 2위로 올라섰다. 2승의 양용은(49)과 배상문(35)이 공동 3위다. 최경주가 35세였던 2005년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PGA투어 3승을 거뒀던 걸 고려하면 김시우의 승수 쌓기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는 2012년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17세5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합격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연소(21세10개월) 우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김시우는 누적 상금에서도 최경주(3271만5627달러)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1300만 달러 고지를 밟았다. 김시우의 누적 상금은 1300만9789달러로, 이 부문 148위로 올라섰다. 김시우는 “최경주 선배님이 쌓은 업적이 워낙 많아 (한국인 최다승까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올해 우승하는 게 목표였는데, 이를 일찍 달성한 만큼 시즌 종료 전까지 1승을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인 소유 골프장서 우승 진기록
김시우는 한국인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열린 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 선수다. 대회장인 PGA 웨스트의 주인은 세계 25개 골프장을 보유한 ‘골프왕’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이다. 유 회장은 지난해 2월 골프장 위탁업체 센추리골프파트너스와 손잡고 이곳을 인수했다. 1986년부터 일곱 번이나 PGA투어 시드전 최종 예선을 여는 등 미국 골프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이곳을 한국인이 소유하게 된 것. 유 회장은 보이지 않는 반발과 싸워가며 인수에 성공했고 결국 이 같은 진기록이 완성됐다.캔틀레이는 이날 하루에만 11타를 줄이는 폭발적인 경기력을 보였지만 김시우에게 밀려 1타 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안병훈(30)은 최종 합계 14언더파 공동 8위에 올랐다. 2020~2021시즌 첫 톱10이다. 임성재(23)는 13언더파 공동 12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