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만 지낼 분 구합니다"…임대차법 피하는 단기임대 증가

집주인들 갱신청구권 부담에
3~6개월만 살 단기 세입자 선호
"현금 일시에 받아 세금 내겠다"는 집주인도

세입자도 이사 시기 못맞춰 단기임대 찾기도
서울 강남 대치동에 위치한 ‘래미안대치팰리스1단지’는 12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지만 전세 물량은 7개 불과하다. 대신 전세 물량만큼 단기임대 물건이 나와 있다. 1~6개월간 짧은 기간 월세로 살 수 있는 매물이다. 보증금은 없거나 수백~수천만원대로 적다. 대신 월세가 수백만원대로 비싸다. 이 단지 전용 84㎡ 단기임대 매물의 보증금 1000만원 기준 월세는 800만~1500만원 수준이다.

삼성동 삼성힐스테이트1단지 아파트 상황도 비슷했다. 전용 84㎡ 이상 중형 면적 기준 전세 매물만큼 단기임대 매물이 있다. 삼성힐스테이트1단지에선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0만원을 주면 6개월가량 살 수 있는 전용 84㎡짜리 단기임대 물건을 구할 수 있다.
서울 대치동 아파트 밀집지역에 위치한 중개업소 전경. /뉴스1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1~6개월 짧은 기간 월세를 살 수 있는 단기임대 방식의 임대차 거래가 늘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최대 4년간 세입자 내보내기가 어렵게 되자 장기세입자를 받는 것을 꺼리는 집주인들이 상대적으로 집을 비우기 쉬운 단기임대를 선택하고 있어서다.

대치동 O공인 대표는 “세입자들과 분쟁을 겪었거나 주변에서 분쟁 사례를 본 집주인들이 전세 들이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집을 비워놓기는 어려우니 몇 개월짜리 짧은 기간 월세를 줘 세입자 계약갱신에 대한 부담을 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마아파트 사거리에 있는 P공인 관계자도 “요즘은 단기임대 매물이 심심찮게 나와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며 “바로 입주 가능한 매물도 전세 물량만큼 있다”고 소개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나 재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가 급등한 것도 단기임대가 증가한 원인이라고 일선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단기임대의 경우 한 번에 받아 들일 수 있는 현금이 많다. 때문에 여유 현금이 부족한 집주인 중 일부가 큰 액수의 월세를 한꺼번에 받아 세금을 충당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동 W공인 대표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갈등을 겪을 일도 없고 최근 세금 부담도 많은데 현금을 일시에 바로 받을 수 있으니 단기 세입자만 구할 수 있다면 단기임대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정보가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세입자들 중에서도 임대차법 때문에 단기임대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직접 실거주를 위해 입주하려고 기존 세입자의 전세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단기임대를 찾는 경우가 많다. 묵시적 갱신을 우려해 전세계약 만기 등을 엄격하게 지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세입자들이 단기임대를 구하는 경우도 많다. 강남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U공인 관계자는 “임대차법 이후 분쟁이 많아지니 서로 이사 시기를 조율하고 양보해주는 관행이 사라졌다”며 “양측 세입자의 이사 시기가 서로 맞지 않으면 지금은 한쪽이 단기임대를 구해서라도 계약 날짜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영향으로 단기임대 매물은 점점 느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힐스테이트2단지는 총 926가구 중 단기임대 매물이 10건이 넘는다. 인근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단기임대 매물은 1년 전만해도 2~3건 수준이었다. 인근 래미안삼성2차 아파트에도 전세 물건은 없지만 단기임대 매물이 2건 나와 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단기임대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주장할 수는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단기임대 세입자도 임대차법에 의해 최대 2년간 임대 기간이 보장되고, 그 이후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 더 요구할 수 있다.서초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단기임대를 구하는 수요자는 주로 외국인이나 학생 등 해당 지역에 수개월만 머무는 자들이 대부분이라 계약갱신청구권을 실제로 주장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최근 아파트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매매 후 2개월간 단기임대를 살다가 나가겠다고 계약한 한 매도자가 임대 기간이 끝난 후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며 계약갱신권을 쓰겠다고 나와 법적 분쟁을 겪은 사례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