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가 뒤흔드는 기재부, '부처 존립' 위기다

자영업 손실 보상이 지원방식과 재원 마련, 선거와 맞물린 집행 시기 등 논란거리가 첩첩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법제화’ 강행 의지를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더욱 관심 가는 대목은 대통령이 중소벤처기업부를 특정하면서 여당과의 협력을 주문한 것이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개혁 저항세력”이라며 기획재정부를 격하게 몰아붙인 데 이어 국정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기재부 패싱’으로 비칠 수 있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중소 사업자들에 ‘코로나 충격’이 집중됐다는 일반적 판단에서 보면 얼핏 보기에 중기부가 주무부처로 나서는 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업무분장에서 예산배분, 세제운용, 중장기 재정계획 수립, 각종 기금활용 등 나라살림을 총괄하는 곳은 기획재정부다. ‘경제팀장’ 부처인 기재부를 배제한 채 내실 있는 종합 지원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느 부처가 더 중요하고 역할을 맡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조직법에 법적 권한과 임무가 그렇게 명시돼 있고, 과거 관행과 전통이 그렇다. 앞서 기재부가 국가지원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것에 신중한 입장을 표하면서 재원 문제를 제기한 것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윽박지르며 기재부를 배제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여권의 ‘감사원 때리기’나 ‘검찰총장 패싱’보다 더 부적절하고 비상식적이다.나라경제 총괄부처가 존재감도 없이 핍박받는 듯한 처지에 몰린 것은 기재부가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 만기친람 청와대와, 말이 당정협의일 뿐 일방통행에 가까운 거대 여당의 광폭 행보가 큰 문제이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부터 재정책임 부처의 수장 역할을 제대로 해왔던가. ‘홍(洪)두사미’라는 냉소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재원 문제만 해도 페이스북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고 한탄이나 하며 당정협의를 피할 게 아니라 무엇이 옳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고 관철해내려는 용기도 내야 한다.

기재부는 부처 존립의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에만 자세를 낮추면서 공직사회에선 여전히 ‘골목대장’이고, 340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에 계속 호랑이 노릇을 한다는 계산이면 절망적이다. 기재부까지 법적 권한과 책무를 제대로 이행 못 하면 나라살림은 누가 챙기나. 바른 소리 했다가 낭인처럼 떠도는 젊은 사무관에게 장·차관과 허다한 실·국장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탈원전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의 행태 등을 돌아보면 공직의 위축과 무소신, 추락이 기재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