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북핵'·블링컨 '미한일 협력'…강조점 다른 한미 외교

미국 관심사는 동맹 강화로 중국 견제…북미대화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
인도태평양전략 측면에서 한미동맹 중요 강조…한일관계 개선 부담도 커져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외교장관 통화에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를 강조한 반면, 미국은 한미일 3자 협력에 방점을 둬 주목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관련 사안이 가장 시급한 외교 현안이지만, 미국은 북한보다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관계를 강화하는데 더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27일 오전 통화에서 한미관계와 한반도 문제, 지역 및 글로벌 사안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은 북핵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시급히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데 공감하고, 동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양국 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도 보도자료에서 "양 장관은 한미동맹의 지속하는 힘과 중요성을 확인했다"면서 "한미동맹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 평화와 안보, 번영의 핵심축(linchpin·린치핀)"이라고 밝혔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미·한·일 3자협력 지속의 중요성과 북한 비핵화의 필요성 지속, 동맹 강화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국무부는 한미동맹 다음으로 북핵보다 한미일 협력을 먼저 언급했는데, 이는 외교부 보도자료에는 없는 내용이다. 통상 외교당국 간 협의 내용은 사전 조율을 거쳐 공개하지만, 보도자료에서 어떤 내용을 부각할지는 각국이 판단한다.

서로 공개한 내용이 다르다고 이견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각국이 어떤 현안에 더 관심을 두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간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한미일 3자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됐는데 그런 전망이 이번 통화에서 어느 정도 확인된 것이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같은 날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통화에서도 미·일·한 협력 지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으로 한미일 공조 강화에 공을 들인 경험이 있어 최근 위안부 판결 등으로 갈등이 고조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어느 정도로 관여할지 관심이다.

블링컨 장관이 한미동맹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이라는 맥락에서 설명한 점도 눈길을 끈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와 일본 정부가 주창해온 이 구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어,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과 경쟁에서 한미동맹을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측면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다음으로 한미일 협력을 언급했다"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인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과 경쟁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를 위해 동맹의 협조를 구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지만, 미중 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는 한국 외교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임기 후반부에 들어서 한반도 문제를 다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신경 쓰느라 북한과 대화 재개 노력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아울러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기 위해서라도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