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김종철 고발에…"피해자 무시" vs "친고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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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제3자 고발 논란한 시민단체가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를 성추행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원치 않은 상황에서 제3자가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고발을 해도 되냐는 것이다.
장혜영 "처벌 종용은 또다른 '피해자다움'의 강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지켜야
27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영등포경찰서로부터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피해자 조사 등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전했다.이 사건의 피해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형사고소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활빈단이 지난 26일 김 전 대표를 강제추행 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장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시민단체에 유감을 나타냈다. 장 의원은 “처벌을 피해자의 의무처럼 호도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다움’의 강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가해자의 시인과 공당의 절차를 통해 성추행이 소명됐고, 공동체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입으로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면서 실상은 피해자의 고통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않은 채 성폭력 사건을 자기 입맛대로 소비하는 모든 행태에 큰 염증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제3자가 성폭력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게 된 것은 성폭력처벌법에서 2013년 친고죄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장 의원이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고발이 있으면 수사가 가능하다.제3자 고발로 수사가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민 단국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장혜영은 친고죄가 왜 폐지됐는지 모르는 것 같다”며 “떠들썩하게 일을 키워놓고선 왜 남의 일에 끼어드냐고 언성을 높이냐”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피해자가 사법절차보다 조직 내 해결이나 별도의 제도를 활용해 해결하길 바란다면 이를 시도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사법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것이다. 친고죄 폐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해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에 개정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고발및 수사가 이뤄지면 오히려 (피해자에겐) ‘내 의사에 반해 형사절차에 강제로 들어가게 된다’는 공포심을 안겨줄 수 있다”며 “피해자에게 고소하라고 종용하거나, 고소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것 모두 2차 피해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성폭력범죄의 친고죄 폐지에 따른 피해자 보호 및 지원 내실화방안’ 보고서도 “성폭력범죄가 곧바로 형사사법절차로 진입하면 피해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 정리하지도 못한 채 절차에 수동적으로 휩쓸리게 되거나 가해자로부터의 또다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자 의사를 무시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성폭력 사건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피해자 진술”이라며 “이 사건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고 의사를 표시하고 있어 별다른 증거가 없는 한 처벌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