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일외교 전화회담 발표자료서 '한미일 협력' 누락

미국 발표 자료에 포함된 내용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없어
'위안부 배상 판결' 반발 차원 의도적 '한국 홀대' 관측

일본 정부가 27일(이하 한국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 간의 전화회담에서 거론된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발표 내용에서 누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블링컨 장관은 상원에서 자신의 인준안이 통과한 뒤 마크 가노 캐나다 외교장관에 이어 2번째로 모테기 외무상과 전화로 현안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오전 8시 넘어 약 30분간 모테기 외무상과 통화한 뒤 강경화 외교장관과도 전화회담을 했다.
일본 외무성은 블링컨 장관과 모테기 외무상의 통화 후에 내놓은 일본어 보도자료를 통해 논의된 내용을 자세히 알렸지만, 미국 측 자료에 포함된 '한미일 협력' 부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관련 자료에서 "블링컨 장관이 (모테기 외무상과의 통화에서) 지속적인 미국, 일본, 한국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명시했다.

블링컨 장관은 강 장관과의 전화회담에서도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거론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관련 보도자료에서 한국을 한번 거론했는데, "두 장관이 중국 및 북한, 한국 등의 지역정세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기술하는 대목에서였다. 외무성은 그러면서 "지역 및 국제사회가 직면한 제(諸) 과제에 대해 일미(미일), 일·미·호주·인도 등 동지국(뜻을 같이하는 나라) 간에 긴밀히 협력해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썼다.

일본 측 발표 내용만으로는 한국은 미일과 함께하는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 미일 양국이 '정세'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누는 대상인 '객체'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외무성이 블링컨 장관의 '한미일 협력' 관련 발언을 공개하지 않아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미 국무성 발표를 인용해 해당 발언을 전했다.
'한국 홀대'로도 비칠 수 있는 이번 일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계기로 한일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지난 23일 확정된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로 일본 측 불만이 고조하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일본 정부에 배상을 명령한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의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로 개인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법원 판결로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 상태가 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모테기 외무상은 이날(27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한국이 국가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조속히 강구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일관된 입장에 따라 모든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이번 미일 외교장관 전화회담 내용 중 미국 측이 언급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누락한 보도자료를 작성해 배포한 이유에 대해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미일 양국이 발표한 자료에는 '주어'(주체)가 다르다"며 두 나라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서로 중시하는 내용을 보도자료에 담은 결과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취재보조: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