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패

민경숙 ( TNMS 대표 min.gs@tnms.tv )
살다가 어려운 상황이 오면 이러다가 내 인생이 어쩌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실패의 두려움과 싸우며 살아왔다.

지나고 보면 이런 두려움이 두려워할 것이 못 되는 하찮은 것들이었다는 점을 깨닫기도 하지만, 학교를 다닐 때는 성적이 나빠도, 일류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도 내 자신이 마치 실패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성인이 돼서는 남이 알아주는 직장에 다니지 못해도 마치 실패한 것처럼 여겨진다. 살아보면 학력이나, 직장이나, 사는 집이나 이런 것들이 나를 실패한 사람이냐, 성공한 사람이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알게 되지만 많은 경우 우린 이런 실패의 공포 속에 휘둘리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나이를 먹고 주변을 살펴보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나, 대학을 못 간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우리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또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다는 것도 알게 된다. 주위에 돈이 많은 부자 중에도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가 있고, 강남 최고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돈과 명예, 학력과 소유가 우리를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나누지 못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주말에 지하철역에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어느 날 한 노숙자가 늦게 와서 밥을 받아가지 못했다. 안타까워하는 순간 다른 노숙자가 자신이 받은 밥을 그 노숙자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두 노숙자는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자신도 배고픈데 자신의 밥을 기꺼이 또 다른 노숙자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노숙자, 이때 늦게 온 노숙자는 자신이 이 음식을 나눠 먹으면 나눠주는 노숙자도 배고픔에 힘들어진다는 점을 알기에 극구 사양한다.

노숙자 봉사를 하다 보면 이런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필요한 약품을 봉사자들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을 때도 노숙자 중 누군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상약을 또 다른 알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기꺼이 나눠준다. 이렇게 나눠주면 나중에 자신이 아플 때 비상약을 살 돈이 없어 곤욕을 치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에게 귀한 비상약을 또 다른 노숙자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작아져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누군가는 노숙자들을 실패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배고프고 어려운 가운데서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노숙자들은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다. 가족과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거리에서 자고 먹으며 어렵게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하고 나누는 사랑을 가진, 성공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