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베이비부머, 제2 인생은 봉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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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영 ( 대한적십자사 회장 hyshin@redcross.or.kr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나 또한 1955년생으로 베이비붐 세대다. 다음달이면 서울대병원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은퇴할 시기가 눈앞에 왔음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정년 후의 삶과 노후 준비 문제는 대화의 단골 주제다.
여전히 정정한 이들이 단순히 나이 때문에 직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평소 노후 대비를 소홀히 하고 오직 일만 하며 직장이 전부인 삶을 살았던 사람일수록 막막함과 두려움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경륜이 많은 그들의 재능이 나이 때문에 빛이 바래간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지난해 여름,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연이은 태풍과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까지 겹쳐 삼중고를 겪었다. 재난이 일상화한 복합재난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전 국민이 실감했다. 그리고 재난구호활동과 더불어 재해·재난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재난 상황에서 정부와 구호단체들은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복구에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리 재난 대응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복합적인 재난 상황에서 그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재해복구 활동만 보더라도 구호품 지급과 급식, 피난처 제공 등의 구호활동과 일상 회복을 위한 복구 활동을 통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문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난과 재해 당사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돕고 책임지는 폭넓은 개념의 봉사활동이 필요하다.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봉사 영역, 비영리 영역을 개발해야 한다. 그 영역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전문가 봉사자들이다.의사 변호사 심리상담가 회계사 등 전문직 퇴직자들이 모여 봉사를 한다면 어떨까? 일할 의지와 능력이 충분한데도 어쩔 수 없이 은퇴한 전문 인력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한다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은퇴하는 국공립대 의사들이 뜻을 모아 의료 낙후 지역에서 진료 봉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전문 인력뿐만 아니라 비슷한 연령대의 자원봉사자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활동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한민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던 역동적인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그런 이유로 누구보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지녔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경험을 바탕으로 주어진 여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고유의 능력을 발휘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고 자존감을 찾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함께 시대의 변화를 겪고 있는 또래들에게 나눔 활동에 도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