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년 -3.5% 역성장…74년 만에 최악

3조달러 부양자금 쏟아부었지만
경기침체 못막아

고용불안에 올 1분기도 먹구름
백신 접종이 변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미국 경제가 작년 -3.5% 역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던 1946년(-11.6%) 이후 74년 만의 최악 성적표다. 역대 최대인 약 3조달러의 부양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경기 침체를 막지 못했다. 작년 말 변이 바이러스까지 출현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더뎌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작년에만 810만 명 빈곤층 전락

미 상무부는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4.0%(연율 기준)를 기록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4.2~4.7%)를 밑도는 결과다. 연율은 현재 분기의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간 계속된다고 가정한 뒤 환산한 수치다.

미 성장률은 작년에 전례 없는 폭으로 급등락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선언(3월 11일)이 나왔던 작년 1분기에 -5.0% 성장했던 미 경제는 2분기에 -31.4%로 급전직하했다. 3분기엔 기저 효과 덕분에 33.4%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변동폭은 정부가 분기별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47년 이후 가장 컸다.

미 GDP는 2017~2019년만 해도 잠재 성장률보다 높은 연간 2.2~2.9%씩 증가했다. 작년 -3.5% 역성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2.5%)은 물론 세계 대전 직후보다도 좋지 않은 수치다. 미 경제는 제2차 오일쇼크가 닥쳤던 1982년에도 1.8% 마이너스 성장하는 데 그쳤다. 팬데믹에 따른 경제 봉쇄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미국 내 빈곤율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시카고대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빈곤율은 11.8%로, 1년 전 대비 2.4%포인트 상승했다. 작년에만 810만여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계산이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작년 서비스업 일자리가 일거에 사라지는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며 “얼마나 더 지나야 어두운 터널의 끝을 볼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미 성장률은 속보치와 잠정치, 확정치로 세 차례 나눠 발표되는데, 이날 수치는 속보치다.

“고용 여전히 불안…1분기도 우려”

올 1분기 경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 GDP의 70%를 차지하는 민간 소비가 침체될 조짐을 보이는 데다 고용 상황도 심상치 않아서다.이날 미 노동부가 내놓은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84만7000건으로, 여전히 80만 건을 웃돌았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이던 작년 3월 초까지만 해도 매주 21만~22만 건에 불과했다. 팬데믹 직후 사라졌던 2220만 개의 일자리 중 현재 복구된 건 1240만 개뿐이다.

작년 11월부터 두 달 연속 6.7%를 기록했던 미 실업률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월가 전문가들은 올 1월 실업률이 전달 대비 오히려 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소매판매는 작년 10월부터 3개월간 부진한 흐름을 이어왔다. 투자은행 ING의 제임스 나이틀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작년 말부터 코로나가 재확산하면서 전국 봉쇄 조치가 강화됐다”며 “올해 1분기에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추가 부양책이 제대로 집행될지도 미지수다. 국가 부채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야당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어서다.다만 연간 기준으로는 올해 경제가 작년보다 나을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역시 작년의 기저 효과 덕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달 중순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미 경제는 올해 4.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골드만삭스는 백신 접종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는 가정 아래 6.6% 깜짝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회계컨설팅 회사인 RSM의 조지프 브루셀라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핵심은 백신 접종”이라며 “접종이 제대로 이뤄져야 경기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