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활기 띠는 리츠자산관리 업계

SK, 대림, 한라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시장에 진출하면서 올해 국내 리츠 시장이 한층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3개 리츠 종목 중 6개 종목이 지난해 상장했을 정도로 최근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우량 자산을 갖춘 대기업들까지 새롭게 진입하면서 리츠 시장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토교통부에 리츠 자산관리회사(AMC) 설립 인가를 신청했거나 인가 절차를 준비 중인 기업들은 10여 곳에 달한다. 이중 자산운용사와 부동산신탁사 등을 제외한 대기업 계열사로는 SK리츠운용, 한라리츠운용, 대림산업,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호반건설 6개 사가 있다. SK리츠운용과 한라리츠운용을 통해 과거엔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도 주로 건설사들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리츠업에 진출했지만 최근엔 비건설사들도 리츠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SK·한라, 지주사 차원에서 리츠 시장 진출

SK리츠운용은 SK그룹 지주사인 SK㈜가 리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7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그룹 내 부동산개발업체(디벨로퍼)인 SK디앤디가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리츠를 운용하고 있지만 그룹 소유 자산을 바탕으로 조성되는 리츠들은 SK리츠운용에게 맡기겠다는 게 SK그룹의 청사진이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출신인 신도철 부사장이 대표직을 맡아 SK리츠운용을 이끈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 빌딩
SK리츠운용은 AMC 승인을 받는 대로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을 자산으로 삼는 ‘SK본사 리츠’를 첫 번째 상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SK그룹은 지난해 우선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해 하나대체투자운용 펀드가 소유 중인 본사 사옥을 되사들였다. 인수 금액은 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이 별도의 AMC를 설립한 것은 앞으로 서린동 본사 빌딩을 시작으로 다양한 그룹 소유 자산들을 리츠를 통해 유동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화 대상 자산으로는 전국 각지에 있는 SK텔레콤 소유 통신중계시설 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부동산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경쟁사인 KT는 산하에 모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자산의 재개발만을 전문으로 하는 KT 에스테이트를 두고 있다”며 “SK그룹 역시 전국 곳곳에 있는 통신중계시설 부지를 재개발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한라, 그룹 차원의 자산 유동화 목표

한라그룹의 지주사인 ㈜한라홀딩스도 리츠 AMC 설립에 뛰어들었다. 현재 예비인가를 통과하고 본인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당초 건설 계열사인 ㈜한라 산하에 리츠 AMC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그룹 차원의 자산 유동화를 위해서는 지주사 주도로 리츠 AMC를 설립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리츠 AMC 설립까지는 나아가지 않지만 두산그룹 역시 최근 준공된 본사 사옥을 자산으로 삼은 리츠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리츠 운용은 코람코자산신탁이 맡으며 현재 국토부에 리츠 영업인가를 신청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지상 27층, 연면적 12만8290㎡ 규모 대형 오피스 빌딩으로 두산그룹 계열사들이 전체 사무공간을 임차해 사용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두산그룹 본사 빌딩
◆양과 질, 모두에서 크게 성장한 지난 한해 국내 리츠 시장

금융투자업계에게서는 비건설 분야 대기업 계열사들까지 리츠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이유를 △리츠 시장의 높은 성장성 △자산 유동화를 통한 현금 확보라는 이유로 나눠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상장 리츠 시장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도 큰 성장을 이뤄냈다. 물류센터(ESR켄달스퀘어 리츠), 주유소 체인(코람코에너지 리츠), 건설 중인 임대아파트단지(이지스레지던스 리츠), 해외 대형 오피스 빌딩(제이알글로벌 리츠) 등 다양한 유형의 자산을 토대로 설립된 리츠들이 대거 증시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과 하나금융투자의 주도로 북미지역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는 이지스하나글로벌 리츠 역시 이번 상반기 상장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다양한 유망 자산에 투자하는 리츠들이 속속 등장하며 대형 쇼핑몰과 국내 오피스 빌딩을 자산으로 삼은 리츠가 대부분이었던 국내 상장 리츠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역시 은퇴자들의 안정적인 소득 마련을 위해 배당성향이 높은 리츠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지원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국내 리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리츠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려는 대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상장 리츠들이 보유하고 있는 빌딩들
◆리츠 활용하면 펀드보다 더 유리한 방식으로 자산 유동화할 수 있어

상장 리츠를 활용하면 부동산 펀드를 활용할 때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회사 소유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다는 것도 대기업들이 리츠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업종 간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첨단 IT기술로 무장한 신규 경쟁자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면서 대기업들 역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다량의 현금을 손에 들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과거처럼 수천억원, 수조원의 현금을 부동산으로 깔고 앉고 있어서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자산 유동화를 준비하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상법상 주식회사로 분류되는 리츠는 펀드와는 달리 정해진 설정 기간이 없다. 리츠를 통해 부동산 지분의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회사로써는 남은 지분을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 갖고 있는 지분 비율만큼 자산 매각 여부, 운용 방향, 임대차 계약 체결 조건 등 주요 사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산 매각 이후에도 빌딩을 임차해 계속해서 본사로 활용하고 싶은 기업들에겐 리츠를 통한 자산 유동화가 매력적인 선택지로 여겨지는 이유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그룹 지주사 차원에서 리츠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이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우량 자산을 토대로 리츠를 설립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존재감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