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게임인] 韓게임사들,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한국 경제 버팀목 된 게임업계…기부 등 사회 환원 꾸준히 한다지만
해외 기업은 공동체 위해 고민…사회적 책임은 곧 '어른의 의무'
우리나라에서 '게임'은 어떤 이미지일까?
몇 년 전만 해도 '철없는 아이나 즐기는 것', '공부에 방해되는 것', '여자보단 남자가 즐기는 것' 같은 말을 떠올린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게임은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취미가 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런 변화에 힘을 실었다.

게임은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졌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 통계로 보면 모바일게임을 하는 비율은 여성(64.7%)이 남성(63.7%)보다 더 높다.

닌텐도 스위치와 '동물의 숲' 열풍으로 콘솔 게임을 즐기는 여성도 폭증했다.

학부모가 게임을 싫어한다는 것도 슬슬 옛말이다. 수학·영어 조기 교육에 좋다는 교육용 게임이 넘치는 시대다.
게임을 향한 인식 변화는 게임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국내 게임 매출액은 약 15조6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2020년 실적은 코로나19 수혜에 힘입어 더 늘어날 전망이다.

2019년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가 389억달러였는데, 이중 게임의 비율이 무려 16%(64억달러)였다.

게임이 'K-콘텐츠'의 버팀목이자 한국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20년은 게임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어엿한 '어른' 대접을 받기 시작한 원년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서 게임 개발이 태동한 지 30여년, 최초의 온라인 그래픽 게임 '바람의 나라'가 나온 지 25년 만의 일이다.
게임사들은 어른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받은 사랑을 사회에 나눈다.

업계 '맏형' 넥슨은 지난해 2월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업계에서 앞장서서 대한적십자사에 20억원을 기부했다.

넥슨은 코딩 교육 등 여러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데, 어린이 의료시설 건축이 대표적이다.

국내 첫 어린이재활병원인 서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200억여원을 기부했고, 현재 짓고 있는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서울대병원-넥슨 어린이완화의료센터에도 100억원씩 총 200억원의 기부를 약정했다.

기부를 약정한 200억원 중 100억원은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가 사재로 쾌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도 코로나19 성금을 20억원씩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하는 등 다양한 사회 환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펄어비스 등 게임업계 전반이 소외계층 및 아동 복지에 기부를 늘리는 추세다.
문제는 이런 게임사들의 선행이 잘 티가 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행은 숨길수록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매번 보도자료를 내면서 딱히 숨기지도 않는데 게이머들도 이런 소식은 잘 모른다.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게임업계의 사회공헌 활동이 사회 전체를 향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개별 회사의 파편적인 기부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게임사들은 '게임이 어떻게 공동체에 기여할까'를 사회와 함께 고민하는 추세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글로벌 게임 기업 일렉트로닉 아츠(EA) 사례를 보자.
EA 임원진은 2019년 20개국의 전문가 200여명을 불러 '건강한 커뮤니티 조성 회의'(Building Healthy Communities Summit)를 열었다.

회의를 통해 EA는 "게임이 모두를 위한 것이 되려면 사이버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는 안전한 게임 활동이 가능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면서 "타인을 위협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게임 내 행동을 엄단하겠다"고 천명했다.

회의에는 사이버 폭력 감시 단체 '디치 더 라벨'(Ditch The Label), 여성들이 운영하는 게임 팟캐스트 '왓츠 굿 게임'(What's Good Games) 등이 참여했다.

이후 EA는 '건전한 커뮤니티를 위한 플레이어 협의회'를 설립해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악성 이용자 신고·차단 기술을 고도화하고, '커뮤니티 건강 보고서'도 분기별로 게재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업계가 번 돈의 일부를 단순히 기부하는 낡은 개념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벗어나,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CSV란 큰 기업일수록 당장의 매출이 아니라 직원, 협력 업체, 나아가 시민 사회 및 국가 등 다양한 이해 집단의 이익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다.

CSR의 효과가 단순한 '이미지 개선' 뿐이었다면, CSV는 실제 '이익 창출'로 돌아온다는 게 핵심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제 '의무'가 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2030년까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초점이 환경 분야에 맞춰져 제조업 기업들이 부각됐지만, 코스피에 상장한 엔씨·넷마블도 당연히 대상이다.

주요국 규제 당국은 ESG 여부를 살필 때 IT·게임 기업의 경우 지속 가능한 사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책무를 다하는지를 주로 본다.

나스닥에 상장한 EA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여성 및 비(非)백인 리더 비율을 얼마나 늘리고 있는지, 여성·동성애자·소수민족 직원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장애인 등 소수자를 위해 얼마나 다양성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지 등을 설명했다.

엔씨·넷마블은 ESG 보고서를 무슨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