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가 재테크라고? 스니커즈를 보는 MZ세대의 시선

번개장터 브랜드 행사의 경품 라인업/사진=번개장터
■ 최재화 번개장터 부대표

왼쪽 사진의 샤넬 보이백과 오른쪽 사진 중앙의 스니커즈 나이키 마스야드(빨간 나이키 로고)를 주목해 보자. 가방과 운동화로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둘 다 매장에서 찾을 수 없는 한정판 아이템이라는 점, 그리고 샤넬과 나이키라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 아이템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위 아이템은 지난해 11월 번개장터에서 진행한 브랜드 행사 ‘월드 드로우 페스티벌’의 경품 라인업 사진이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한정판 아이템들의 드로우(사전에 응모한 고객 대상 랜덤 추첨 방식)와 비대면 뮤직 페스티벌의 조합으로 진행된 행사는 10만 명이 훌쩍 넘는 참여를 이끌어 내며 성황리에 종료됐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템이 더 화제가 되고, 더 비싸게 거래됐을까. 정답은 ‘나이키 마스야드’다.

언뜻 보면 길가다 본 것 같기도 한 이 운동화의 작년 말 기준 리셀 가격은 약 800만 원. 물론 나이키 매장에서 처음부터 800만 원에 팔았던 것은 아니다. 2017년 발매 당시 한정 수량으로 전 세계에 공급됐고, 발매가는 23만9000원.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톰 삭스가 본인의 우주 관련 작업의 연장선으로 나이키와 협업한 나이키 운동화인데, 약 3년이 지나 30배 이상 값이 뛰었다.

스니커즈, 덕후 중심의 하위 문화에서 메가 트렌드로

패션은 개인 사업을 했을 정도로 관심이 있지만, 8cm 이상의 하이힐을 주로 신었던 필자는 스니커즈(운동화)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나이키에서 하는 한정판 드로우에 대한 부탁을 받았다.

“어차피 스니커즈 별로 관심 없잖아. 내일 나이키 공홈(공식 홈페이지) 가입해서 이 신발 응모하기만 눌러주면 돼.”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인을 동원하려는 작전이었다.

당시에는 ‘얼마나 대단한 운동화 길래, 응모까지 해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으려고 하는 거지. 매니아층이 있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현재 스니커즈 문화는 궁합이 잘 맞는 ‘스트릿 패션’과의 콜라보가 만든 메가 트렌드화와, 나처럼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스니커즈를 ‘주로’ 신기 시작한 여성 소비자의 참여, 그리고 셀럽과 연계한 한정판 마케팅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국내에서 크게 성장했다. 스니커즈 ‘덕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국내에서 스니커즈 리셀 문화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9년 나이키의 스테디셀러 모델인 에어 포스 1과 지드래곤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의 협업 프로젝트였던 파라노이즈 첫번째 시리즈 발매라고 입을 모은다.

818족 한정판으로 발매된 이후 리셀가가 60배 이상 오르기도 했던 일명 지디 포스는 스니커즈 드로우, 래플, 슈테크라는 컨셉을 대중에 알리며, MZ세대들이 열광하는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는데 공헌했다. 스니커즈 발매 다음날, MZ 유저가 주축이었던 번개장터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는 피마원 관련 검색어로 도배되었을 정도였다.


스니커즈 시장의 성장 배경

작년 초 번개장터에 합류한 뒤 실제 숫자로 체감한 스니커즈 거래 시장은 훨씬 컸다. 2019년 말 기준 1조원에 달했던 번개장터의 거래액 중 약 10%가 스니커즈 카테고리에서 발생하고 있었고, 평균 거래 단가도 수십 만 원에 달했다. 신다가 질린 낡은 스니커즈를 거래해서 나올 수 있는 단가는 아니다. 이후 스니커즈 개인 간 리셀 거래에만 집중하는 전문 앱 서비스들이 국내에도 출시되었고 견조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꼭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스니커즈를 활용한 프로모션이나 마케팅 활동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2021년 현재, 한정판 스니커즈 관련 시장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성장과 관련해서는 아직 많은 질문들이 있고, 해석과 의견이 분분하다. 잠깐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문화는 아닐지, 경쟁적으로 신발을 구매해서 신지도 않고 높은 가격에 리셀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문화인지, 한국에서만 유독 난리인 것 아닌지 등.

이에 대한 논의나 가치 판단은 잠시 접어두고, 마케터의 시각으로 한정판 스니커즈 시장 성장 과정에서의 특징적인 네 가지 포인트를 정리했다.


특징1 갑자기 생긴 유행이 아닌, 수십 년 동안 다져진 문화의 성장

스니커즈 문화는 기존에 없었던 문화가 아니다. 시작은 지드래곤의 파라노이즈 1이 아니고, 1990년대 마이클 조던이 누볐던 NBA 코트였다. 나이키에서 조던의 이름을 따서 1984년에 처음 출시한 농구화 에어 조던은 아직도 가격이 오르고 있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현대적으로 변주하며 새로운 버전을 매년 출시하고 있다. 에어 조던에서 시작된 스니커즈는 힙합이라는 문화를 만났고, 스트릿 패션이라는 장르를 만나 변주되며 기반을 확대해 갔다.

우리나라에도 20년 가까이 스니커즈 덕후들이 활동하며 만들어온 스니커즈 전문 커뮤니티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커뮤니티인 풋셀은 작년 번개장터와 한 가족이 됐다. <번개장터, 17년차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 인수> 드로우라는 신제품 출시 방식과 한정판 문화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스니커즈 씬에 투자하면서 나이키가 배운 찐 전략이다. 나이키 코리아의 공식 홈페이지는 요즘도 여전히 인기 모델 발매일에 다운된다.


특징2 나이키의 여유로운 진화와 시장 선도

스니커즈 씬을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빼고 말할 수 있을까. 2020년 번개장터 검색량 기준 톱3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나이키 피스마이너스원 △나이키 오프화이트 순이다. 가장 핫한 트렌드의 정점에 있는 두 회사는 설립 연도가 1964년(나이키)과 1949년(아디다스)이다. 시장의 변화에 맞추어 적절하게 변화한 정도가 아니라, 시장을 선도하며 진화해왔다.

나이키는 명품 브랜드 디올과 협업해 에어 디올이라는 리셀가 1500만원에 달하는 스니커즈를 출시했고, 위에서 언급한 아디다스 이지부스트는 미국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해 제작된 모델이다. 사실 아디다스가 스니커즈 리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2014년 리셀 시장 점유율 1%정도에 그쳤던 아디다스는 이지부스트 라인을 출시하며 점유율을 30%이상으로 확대했다.

조던에서부터 시작한 나이키의 지분이 절대적이기는 하지만, 두 대표 브랜드의 성장과 창의적인 변주는 많은 스니커즈 덕후들 뿐만 아니라 패션 업계 전반에 영감을 주며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특징3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더 커진 판

기술 중심 기업들(tech firm)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욱 쉽게 스니커즈 리셀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시장을 키우는데 크게 공헌했다. 2020년 말 기준기업 가치를 3조원 가까이 인정 받고 있는 미국의 스타트업 StockX는 개인간 스니커즈 리셀 거래를 마치 홈트레이딩 앱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이다.

물론 미국에는 개인 간 거래를 할 수 있는 오픈 마켓인 이베이가 있었지만, 이베이는 가품 검수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정품 구매를 원했던 사람들은 원하는 스니커즈를 구하기 위해 유명한 스니커즈 매장 앞에서 밤을 새워 줄을 서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 등장한 StockX 또는 GOAT 같은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간접적인 가품 검수 방식만을 제시하며 플랫폼 본연의 역할을 고수했던 이베이는 최근 전문가의 직접 가품 검수를 공식화하며 스니커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StockX 이전에도 이미 웹 기반으로 스니커즈에 대한 정보를 나누거나 거래를 돕는 앱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들이 앱 형태로 진화하거나 혹시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생기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편하게 스니커즈 리셀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특징4 MZ세대 맞춤형 보물 1호

MZ세대가 집과 좋은 차를 사기 위해 모아야 할 돈은 너무 많다. 기약없는 내일 보다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잘 보낸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한 MZ세대에게 100만원 짜리 스니커즈는 나를 위한 썩 괜찮은 투자고,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기도 간편하다. 매일 매일 신으며 행복하고, 신지 않고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 때 유년 시절을 보낸 30~40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 오래된 스니커즈 모델에 대한 스토리를 알게 되고, 뒤늦게 예전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한다. 운동화 한 켤레를 사는 것이 아니라, 에어 조던을 사면서 마이클 조던의 코트에서의 열정을 갖게 되고, 톰삭스 협업의 마스야드를 사며 건축가의 우주 세계관을 내 방에 갖게 된다.

작년 넷플릭스에서 마이클 조던을 주인공으로 한 ESPN의 다큐멘터리 The Last Dance가 한국에 릴리즈되었을 때 스니커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말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한국 뿐이었을까. 이 다큐가 전세계 릴리즈가 된 이후로, 한 동안 거래가 거의 없다시피했던 에어 조던 1 거래량과 가격은 두 배 이상 올랐고, 조던의 친필 사인이 있는 에어 조던 한 켤례는 경매에서 약 6억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MZ 세대에게 스니커즈가 주는 가치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내가 목표해볼 만한 명품, 그 이상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 볼 때 스니커즈 씬의 성장은 우연히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참여자가 기존 덕후 중심에서 대중으로 빠르게 확대되면서 스니커즈 문화는 분명 성장통을 겪을테지만,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단단하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한 챕터가 열리지 않았나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번개장터 또한 스니커즈 문화가 성장하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2월26일 여의도 파크원의 ‘더 현대 서울’에 오픈하는 번개장터의 스니커즈 쇼룸 ‘BGZT Lab(브그즈트 랩)’이 또 하나의 구심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