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에 청춘 바친 기술통…인텔 구할 구원투수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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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겔싱어 인텔 차기 CEO
혁신의 시기 이끌 '30년 인텔맨'
고객사 잃고 경쟁 뒤처져 위기 맞자
인텔 개발자 출신 겔싱어에 'SOS'
17세에 입사해 기술자의 삶
386·486 프로세서 개발 주역
30대에 인텔 최초 CTO 맡아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라"
VM웨어 CEO 지내며 매출 3배↑
외부 파운드리社 활용 늘리는 등
"기존 경영 전략 흔들 것" 전망

위기에 몰린 ‘반도체 왕국’ 인텔의 차기 CEO로 오는 15일 취임하는 팻 겔싱어의 소감이다. 겔싱어는 과거 인텔에서 30여 년간 몸담으며 최고기술책임자(CTO), 수석부사장 등을 지낸 ‘기술통’이다. 그는 시장점유율 하락과 기술 개발 정체를 겪고 있는 인텔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겔싱어는 취임 전부터 회사 경영을 챙기기 시작했다. 최근 인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 나와 “2023년 대부분의 반도체 제품을 자체 생산하겠다”며 “우리는 명백한 선두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자 출신의 새 ‘구원투수’
인텔은 반도체 설계·생산·판매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이다. 한때 대부분 PC에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담겼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홍보 문구는 회사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매출 기준으로 여전히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지만 생산·설계 경쟁에서는 대만 TSMC,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에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은 CPU 판매량에서 큰 격차로 앞섰던 AMD에도 갈수록 시장을 내주고 있다.
30대에 인텔 CTO로 임명
겔싱어는 인텔에서 386 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 앤디 그로브 전 인텔 CEO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나의 경력을 결정 지은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겔싱어는 이후 수십 년간 그로브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무어의 법칙’(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도 겔싱어의 멘토 가운데 한 명이다.
겔싱어는 인텔의 486 프로세서 개발에 참여한 뒤 2001년 39세의 나이로 인텔의 첫 CTO가 됐다. 2009년 수석부사장에 오르며 차기 CEO로 거론됐지만 회사를 떠나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EMC, VM웨어 등에 몸담았다.
VM웨어 매출 세 배 늘려
겔싱어는 2012년 9월부터 8년4개월가량 VM웨어 CEO를 지내면서 클라우드 인프라, 사이버 보안 등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다. 재임 기간 VM웨어 매출도 세 배가량 늘렸다. 그는 회사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 위해 2018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VM웨어 연례 콘퍼런스’에서 왼쪽 팔뚝에 굵은 검정 글씨로 ‘vm ware’라는 회사명을 새긴 문신을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지워지는 문신이었지만 평소 착실한 성격의 겔싱어가 이 같은 돌출 행동을 보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반도체업계에서는 겔싱어가 취임하면 인텔의 경영 전략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면서도 일부 제품은 TSMC, 삼성전자 등 외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활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겔싱어는 2019년 경제전문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변화의 물결 앞에 서지 않는다면 방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다. 파도에 맞선 방향으로 올라타서 그 에너지를 당신 앞에 끌어와야 한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