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미래 이끌 'AI 전사' 3년내 1000명 키우겠다"

한국의 AI 혁명가들
(1) 배경훈 LG AI연구원장

AI로 배터리 수명 예측해 수백억 비용절감
부정적이던 임원들도 앞다퉈 프로젝트 제안

계열사 2000억 펀딩 지원 업고 연구 박차
연구원을 '1조 유니콘'으로 만드는 게 목표
배경훈 LG 인공지능 연구원장.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런 앤드 건(Run and Gun).’ 글로벌 인공지능 트랜스포메이션(AIX) 경쟁을 업계는 이렇게 압축한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으니 참전부터 하고 보자는 ‘닥치고 속공’ 전략에서 팽팽한 긴박함이 읽힌다. 인공지능(AI)으로 해법을 찾는 산업의 AIX는 이미 승자독식의 ‘전장(戰場)’으로 변한 마당이다. 진화된 AI 기술과 인재 확보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말 국내 언론 최초로 AI경제연구소를 설립해 업계 최전선의 소식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AI혁명가’들의 분투기를 통해 디지털 뉴노멀의 핵으로 떠오른 AI노믹스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LG그룹은 지난해 12월 AI연구원을 발족했다. 그룹 차원의 AI 연구 총괄조직을 꾸린 국내 첫 사례다. 16개 계열사마다 다른 복잡다단한 현업 문제를 한곳에서 다룬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도박처럼 보였다. 자신감이 그만큼 컸다.배경훈 LG AI연구원장(45)은 “2년 전 구성한 AI추진단 때부터 노하우를 축적했고, 강화된 AI 기술이 나오면서 어느 순간 시너지가 터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AI혁신의 마력

“AI에 부정적이던 임원들까지 이젠 자발적으로 AI 프로젝트를 들고 찾아온다. 그게 가장 큰 변화다.”

그는 추진단 시절부터 계열사를 순회하며 AI 시연회를 여는 등 ‘AIX’ 전파에 공을 들였다. 개중엔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있었다. 그룹 범용 챗봇이 더듬거리기라도 하면 “그것 보라”는 타박이 들어오기도 했다. “챗봇은 처음부터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진화하도록 설계됐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해프닝이었다”는 게 배 원장의 얘기다.

짧은 기간 상전벽해를 몰고온 건 ‘폭주기관차’처럼 진화한 AI의 위력이다.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수명과 용량을 AI로 예측해 전기 소비량을 40%나 줄였다. “불필요한 충·방전 과정을 줄였더니 500억원대의 전기료가 절감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LG화학 생명과학본부도 3년6개월 걸리던 신약 후보물질 확보 기간을 8개월로 줄였다. 배 원장은 “사람이 1만 번 이상 실험을 했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은 이처럼 경제 효과 100억원 이상인 난제, 하나의 AI 성공 사례를 열 곳 이상에 응용할 수 있는 ‘10X’ 공통 과제 발굴과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실패해도 좋다”…2000억원 지원

LG AI연구원에는 직급과 연공서열이 없다. 7단계의 ‘역량 등급’만 있을 뿐이다. 실력으로만 보겠다는 얘기다. 변동급으로 불리는 성과급도 ‘연봉 100억원 샐러리맨 신화’가 가능하도록 파격적 구조로 짰다. 배 원장은 “대리 과장급 연구원이 임원급 연봉을 받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조직”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엔 16개 계열사가 연구, 프로젝트 실행비용 2000억원을 펀딩 형태로 지원했다. 그는 “비용 대비 수익률로 따지자면 200~300%의 성과”라며 웃었다.데이터가 풍부한 연구 실무 환경은 구글이 눈여겨볼 정도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전자에서 생명과학까지 갖춘 LG그룹과 달리 구글은 데이터를 생산하는 제조 부문이 없다는 게 한계다. 배 원장은 “LG에는 빅데이터와 데이터 인텔리전스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구글에 없는 AI 실험 환경이 구축돼 있다”며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구글과 전략적 협력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용인하고 복합적 능력을 이끌어내는 ‘애자일(agile) 조직’ 운용은 또 다른 동력이다. 배 원장은 “이전엔 사업을 론칭할 때마다 ROI(투자자본수익률)를 따지며 실패를 두려워했다. 지금은 정반대”라고 말했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1976년생이다. 그가 삼고초려 끝에 CSAI(최고AI과학자)로 영입한 이홍락 미시간대 교수가 1977년생이다. LG그룹의 인공지능 트랜스포메이션(AIX) 전략을 AI업계의 ‘황금세대’로 불리는 1970년대생 ‘투톱’이 주도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연구원을 독립 유니콘으로”

최대 과제는 인재 확보다.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44)를 최근 임원급 C레벨 AI 사이언티스트(Chief Scientist of AI)로 영입한 게 첫 번째 단추다. 구글 인공지능 연구팀인 구글브레인에서 4년간 초고도 신경망 AI를 익힌 그는 교수를 겸직하며 LG의 AI 연구에 힘을 싣고 있다.

인재 영입과 협력 네트워크 확대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자체 양성으로 해결한다. 석사급 이상 연구 정예요원을 비롯해 현장과 전문가를 잇는 AI컨설턴트 등의 AI 인재를 3년 안에 1000명까지 늘려나갈 계획이다. 그룹 내에서 석·박사로 인정해주는 사내 학위 프로그램도 운영하기로 했다. 궁극적으로는 연구원을 별도 AI 전문 기업으로 독립시킨다는 구상이다. 배 원장은 “클라우드 관련 AI 프로젝트 하나가 1조원 가까운 가치로 평가받는다”며 “해외로 고객군을 넓힐 경우 (연구원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게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돈보다 가치…선(善)한 AI 개발 주력

LG AI연구원은 올해 LG전자 부품 생산에 적용할 ‘어드밴스트 비주얼 검수(Advanced Visual Inspection)’와 개인 맞춤형 세포치료제 개발에 도전한다. 비주얼 검수는 제품 이미지 데이터로 불량 부품을 찾아내는 초고도 AI 자동검수 기술이다. 개인 맞춤형 세포치료제는 사람마다 다른 유전정보 빅데이터 분석이 필수다. 배 원장은 “세포치료제는 안전성을 매우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AI 모델이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거진 AI의 편향성에 대해선 해법이 있을까. 배 원장은 “LG의 AI 연구는 돈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편향된 정보를 만들고, 그 안에 고객을 가두는 기존 AI 기업과는 다르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는 얘기다. 그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걸 이해하는 선한 AI, 경청하는 AI를 개발하는 게 LG AI연구원이 가고자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 배경훈 원장은…△1976년생
△광운대 전자공학 학사·석사·박사(Computer Vision)
△컬럼비아서던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MIT 슬론 경영대학원 AI 전략 과정 수료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빅데이터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이관우 IT과학부장 겸 AI경제연구소 부소장/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