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코로나 시대의 여행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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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ongham@hanmail.net >백신 접종과 치료제 개발로 온 세상에 집단면역이 생긴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조사 결과 국내외 모두 1위는 ‘여행’이라고 한다. 과거는 후회스럽고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더 암울해지는 현재로부터 벗어날 탈출구가 여행이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기 위해 인간은 여행을 꿈꾼다 했다. 그러나 올해의 여행 전망도 지극히 어둡다. 올 후반기에나 집단면역의 희망이 실현된다 해도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빈곤한 곳이 지구의 절반을 넘고, 최애 여행지인 유럽과 미국은 그야말로 바이러스의 창궐지이니 갈 곳도 마땅찮다.그래도 인류는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 세계적인 여행 플랫폼 스카이스캐너가 ‘2021년 여행 트렌드’를 발표했다. 대세는 ‘줌 아웃’, 홀로 즐기는 비대면 여행이 되리라 예측한다. 인적이 드문 자연에서 즐기는 차박이나 글램핑이 대표적인 줌 아웃 여행이다. 또는 ‘낙원에서 일하기’, 미국의 특수층들은 카리브해의 휴양지에 장기 거주하며 재택근무한다고 한다.
덜 유명한 여행지를 다시 발견하는 ‘재생 여행’도 권장 사항이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근교로 떠나는 ‘도시 너머로’ 소소한 여행이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OO곳’ 등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적금을 들고 계획을 세워 떠났던 과거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이다.
많은 이들이 이미 온라인에서 가상여행을 즐기고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등의 유튜브 콘텐츠는 웬만하면 수십만, 그리스 편은 100만, 평양 편은 25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갈 수 없는 곳곳을 방구석에서 편하게 기대어 여행하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현지 유튜버들과 연대해 몇 시간 만에 유럽 현지를 여행하는 랜선 패키지 상품도 등장했다. 현지 가이드까지 동원하고 현지식을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는 진짜 패키지 같은 가상 여행이다.아르헨티나의 대문호 보르헤스는 한 인터뷰에서 “세계는 지리적으로 펼쳐진 도서관이고, 여행은 세계의 한 곳을 골라 읽는 독서”라고 했다. 여러 곳을 여행하는 건 다독, 한 곳을 자주 가면 정독, 고대 문명지 탐험은 고전 강독, 유명 관광지 체험은 잡지 구독 등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독서는 그야말로 단독, 비대면, 가상여행으로 지금에 너무나 적합한 여행법이다. 온라인 여행은 환승역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낯선 현지 환경의 긴장감도 없어 너무 안이한 체험이다. 그러나 독서는 집중하고 시간을 쏟으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쏟아야 한다. 실제 여행에 따르는 시간, 노력, 긴장들에 근접한 체험이다. 남미의 또 다른 문호 마르케스는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지옥 같은 역병의 시대에도 사랑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사랑은 물론, 여행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