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 제2의 '게임스톱'이 될 것인가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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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와 비슷하게 게임스톱 주가가 하락하자 전체 시장은 안정을 찾는 분위기였습니다. 일부는 그동안 게임스톱 사태로 인한 미 중앙은행(Fed)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아연방은행 총재는 "개별 종목에 대한 투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해 투자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또 미 의회예산국(CBO)은 2021년 중반까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팬데믹 이전 고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후 5시 6180억 달러 규모(개인당 1000달러 추가 지급)의 부양책을 제안한 공화당 의원 10명을 만나 논의한다는 소식도, 부양책이 1조 달러 안팎에서 초당파적으로 합의될 것이라는 기대를 부추겼습니다.
게임스톱 주식은 프리마켓에서는 최대 18% 오르면 384.89달러까지 상승하기도 했지만, 정규장이 열리자 -10%로 출발했고 점점 더 하락폭을 키웠습니다. 결국 30.8% 밀려 225달러로 마감됐습니다.원인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 공매도 잔량 대폭 감소
시장정보업체 S3는 이날 게임스톱 주식에 대한 공매도 잔량이 2712만주, 882억 달러 규모로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유통주식의 53% 수준입니다. 지난주 최대 약 5700만주, 유통주식의 139%에 달했던 게 3520만주나 줄어든 겁니다. 그만큼 헤지펀드들이 부지런히 '눈물을 머금고' 공매도 포지션을 정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에 따라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리는 데 드는 이자도 연 10%대로 떨어졌습니다. 헤지펀드들의 '쇼트 포지션'이 상당부분 정리되고 게임스톱 주가도 내리면서 '쇼트 스퀴즈'에 몰린 헤지펀드들의 디그로싱(포지션 축소)으로 급락했던 아마존(4.26%) 마이크로소프트(3.32%) 애플(1.65%) 등 대형 기술주들은 이날 모두 크게 반등했습니다. 그래서 나스닥 상승폭이 2.55%에 달한 겁니다.
② 감마스퀴즈도 대폭 해소
그동안 게임스톱 주식 폭등세엔 콜옵션 매수에 따른 '감마 스퀴즈'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외가격 콜옵션을 대거 판매한 옵션시장 마켓메이커(대형 금융사)들이 주가 폭등으로 옵션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울며 겨자먹기'로 주식을 사들였던 겁니다. 이런 콜옵션 가운데 주간 주식옵션은 지난주 금요일(1월29일) 만기를 맞았습니다. 주간 옵션은 매주 목요일부터 거래돼 다음주 금요일까지 8일간 거래됩니다. 즉, 감마 스퀴즈 물량도 상당폭 해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③ 로빈후드가 여전히 매수를 제한한다
로빈후드의 거래 제한은 계속됐습니다. 이날 장 개시할 때 매수 허용 수량이 1주에 불과했다가 4주로 늘었고, 오후엔 20주로 확대하긴 했습니다. 로빈후드측이 이날 추가로 24억 달러(지난주 10억 달러를 포함하면 모두 34억 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며 매수 허용량을 늘린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스탑을 이미 20주 이상 보유중인 투자자들의 추가 매수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개인들의 매수가 계속 통제되면서 주가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④ 블랙록 등 기관 물량이 나온다?
게임스톱은 기관투자자 대주주가 많습니다. 블랙록이 860만주(12.3%), 뱅가드가 528만주(7.58%), 서스퀘하나 444만주(6.37%) 등입니다. 대부분 스몰캡 중심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물량으로 추정됩니다. ETF 중 액티브 ETF거나, ETF 보유가 아닌 물량이 시장에 출회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⑤ 레딧 투자자들이 은으로 몰려갔다.
이날 3월물 은 선물은 장중 30.35달러까지 올라 2013년 2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습니다. 막판 오름폭이 소폭 줄어 2.50달러(9.3%) 오른 온스당 29.418달러를 마감했지만 이것도 하루 상승폭으로는 2011년 7월13일 이후 최대폭입니다.
은은 선물과 현물, ETF, 은광회사 주가 등 모든 가격이 다 올랐습니다. 대표적인 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인 'iShares Silver Trust'(SLK)는 장중 11%까지 올랐다가 7.5% 오른 채 마감했습니다. 지난주 이틀간 6.7% 뛴 데 이은 겁니다. 일부 은광업체 주가는 30% 이상 폭등했습니다. 이는 '게임스톱 사태'를 주도해온 WSB의 개미들이 대거 몰린 탓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게임스톱에 이어 은을 집중 매수해 '쇼트 스퀴즈'를 유발하자"는 글 수백 개가 토론방에 올라왔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금과 은값은 1대 15 수준인데, 대형 은행들의 공매도 등으로 1대 64까지 벌어졌다"며 "은을 사들이면 '쇼트 스퀴즈'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개미는 "은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시장 조작이 이뤄지는 곳 중 하나"라며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은 가격은 온스당 25달러가 아니라 1000달러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글들이 올라온 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이날까지 사흘 연속 올랐습니다. 또 주말 사이 귀금속 유통 사이트에는 매입 주문이 쏟아져 은괴 품절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과연 은 가격은 게임스톱 주식처럼 급등할까요? 월가에선 그럴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시장 크기가 훨씬 크다
게임스톱의 주가는 이번에 최고로 올랐을 때 200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은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 규모로 훨씬 큽니다.
세계 최대 은 현물시장인 런던에서 하루 거래되는 은은 5억 온스에 달합니다. 연간 생산량 10억온스를 감안하면 시장 규모는 엄청나게 큽니다. 은값을 100~1000달러로 끌어 올리려는 것은 "바닷물을 비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한 트레이더는 말했습니다.
② 상품과 시장이 다양하다
은은 현물뿐 아니라 선물, ETF, 은광업체 등 투자 대상이 다양합니다. 개별 주식 시장과는 다릅니다.
③ 선물시장에 숏보다 롱포지션이 많다
WSB에는 은에 대한 '쇼트 포지션'이 많다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은의 경우 2019년 중반 이후 롱포지션(가격상승을 기대하고 매수한 상태)이 더 많은 상태입니다. 게임스톱과 같은 '쇼트 스퀴즈'가 발생할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④ 언제든 규제가 가해질 수 있다
CFTC는 은 시장이 요동칠 경우 증거금을 올리는 등 규제를 통해 언제든 변동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말 은 가격을 온스당 3달러대에서 10달러까지 밀어 올렸던 헌트 형제는 선물을 통해 은을 매집했습니다. 하지만 CFTC가 개인의 은 선물소유량을 300만 온스로 제한하면서 은 가격은 무너졌습니다. 은 값은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20년 이상 10달러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⑤ WSB 개인들 분열
레딧의 개미들은 한 방향으로 뭉쳐있지 않습니다. WSB에도 은 매수 주장은 틀렸으며 매입을 자제하라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특히 세계 최대 은 ETF인 SLK에는 개미들이 미워하는 헤지펀드 시타델이 1억8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은 값을 올리면 시타델 좋은 일만 시킨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일부에선 "은 매입을 부추기는 게 게임스톱 주식에서 개미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헤지펀드들의 작전"이라는 설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작용한 탓인 지 은값은 이날 장 초반 10% 이상 폭등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승폭이 감소했습니다. 게임스톱 사태로 인한 앞으로 뉴욕 증시의 전반적으로 장세는 어떻게 될까요?
UBS는 "시장 관심이 기업 실적, 경기부양책, 백신 접종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중단기적으로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이 변동성을 잘 이용한다면 중단기적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조언했습니다. 12개월 안쪽으로 목표 기간을 설정하고, 5% 또는 10%의 급락이 있을 때 매입하라는 겁니다.
메릴의 크리스 하이지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시장이 '쇼트 스퀴즈' 등으로 시끄러울 때 자산운용 담당자들은 몸을 사리기 때문에 당분간 시장 상승은 제한될 수 있지만, 백신보급으로 인한 경제 정상화와 예상보다 좋아지고 있는 기업 실적 등을 감안하면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모건스탠리는 약간 다릅니다. 마이크 윌슨 CIO는 중장기적으로 강세장이 유지될 것으로 보면서도 당분간 조정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는 "M1, M2 등 통화량 증가세가 정점에 달했고 헤지펀드들의 디그로싱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개인뿐 아니라 기관 투자자들의 레버리지가 어느 정도 줄어들 때까지는 조정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