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앞둔 백신 노리는 '백신 사냥꾼' 활개…윤리적 비판도

종일 기다려 남는 백신 먼저 맞아…운과 여유 필요한 '도박'
건강한 사람이 먼저 접종하는 데 대한 '불공정' 인식도
사용기한이 임박해 버려질 위기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사냥'해 남들보다 먼저 백신을 맞는 '백신 사냥꾼'들이 활약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백신 사냥꾼은 백신 접종소나 약국을 돌아다니며 사용기한이 곧 끝나 의료진이 즉석에서 접종자를 찾는 백신을 노리는 이들을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 접종이 이뤄지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과 모더나 백신은 해동 뒤 상온에서 각각 2시간과 12시간까지만 보관할 수 있다.

CNN방송은 "백신들이 버려진다는 언론보도와 백신 보급 속도가 빨라짐에 따른 불안감이 백신 사냥꾼을 추동했다"라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일찍 백신을 맞아 백신 낭비를 막길 바란다고 말한다"라고 전했다.방송은 백신 사냥이 "백신 접종계획의 조정력이 떨어짐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백신 사냥꾼은 늘어나는 추세다.

CNN방송에 따르면 루이지애나주(州) 뉴올리언스 툴레인대 의과대학 학생인 브래드 존슨은 주민에게 사용기한이 임박한 백신이 있는 접종소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는데 3주 만에 회원이 600명 가까이 늘었고 현재는 950명이 넘었다.
백신 사냥을 두고 윤리적 비판도 나온다.

접종소에서 종일 기다려도 사용기한이 임박한 백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백신 사냥은 '도박'이다.

운과 함께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백신을 기다려도 될 만큼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백신 사냥꾼으로 사흘 만에 접종에 성공한 메디나라는 이름의 25세 여성은 CNN방송에 자신이 프리랜서 초단기 노동자로서 "종일 백신을 기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일종의 특권적 위치에 있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거리낌은 없다면서도 "접종소들이 업무를 더 잘 수행하고 애초 의도대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생명윤리 학자인 멜리사 골드스타인 조지워싱턴대 공중보건대학원 부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이 접종대상조차 맞기 어려울 정도로 귀하고 수요가 많으므로 건강한 사람이 접종받으면 기술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백신을 훔친 경우가 아닐지라도 '부당하다'라는 인식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신 사냥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을지언정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있다"라면서 기업가처럼 행동해 접종 기회를 창출해내는 것을 완전히 그른 행위로 보는 것엔 의문을 제기했다.

백신 사냥도 시간 등에 여유가 있어야 하기에 특권적 행위이고 여력이 있는 사람만 백신을 일찍 맞을 수 있으면 불평등이 심화하기만 하는 문제가 있지만, 뇌물을 주고 먼저 백신을 접종받으려는 행위 등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골드스타인 부교수는 "백신 사냥을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는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체계 속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단호하고 끈질기게, 공격적으로 나서라고 부추겨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