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정주영' 정상영 KCC 명예회장, 큰 형 곁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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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유족과 현대가 친인척 애도 속 영결식 엄수“고인은 산업보국(産業報國)과 기술입국(技術立國)의 높은 뜻을 대한민국 사회에 깊이 심어두고 현장을 벗어났다”(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
60여년 경영현장 지킨 열정 넘치는 창업주
산업보국·기술입국 큰 뜻 대한민국에 남기고 영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자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62년 동안 지켰던 경영 현장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큰 형 곁으로 떠났다. 정 명예회장의 영결식과 발인이 3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부인인 조은주 여사와 삼형제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 등 가족과 친인척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고인의 조카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를 비롯해 현대가(家) 장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도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날 영결식은 주원식 KCC글라스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진행했다. 주 부회장은 "큰 별이 졌다"며 "현재도 임직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고 애도했다. 고인의 모교인 동국대 총장을 지낸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은)언제나 '나라가 있어야 기업이 있다, 국적 없는 기업과 경제는 없다'라고 말했다"며 "고인의 높은 뜻을 승계한 아드님과 직원들이 회사를 더 큰 발전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영결식이 진행된 약 30분 동안 범현대그룹 전·현직 임직원 등 100여명은 복도와 건물 밖 등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운구차가 떠나기 전 이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일부는 지난해 11월까지도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챙겼던 고인을 기억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영결식 후 운구차는 각계 인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빈소를 떠났다. 운구 행렬은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거주하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과 고인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는 서울 서초구 KCC건설 본사, KCC 본사를 돈 뒤 장지인 경기 용인시 선산으로 향했다.
1936년 강원 통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22세 때인 1958년 8월 현재 KCC의 전신인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해 KCC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현재 KCC그룹은 자산기준(지난해 11조원) 재계 32위로 성장했다. 수입에 의존해왔던 도료, 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기술 국산화와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재계에서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여년을 경영일선에서 몸담았다. 국내 기업인 중 가장 오래 경영현장을 지켜온 기업인이란 평가도 있다.
정 명예회장은 형제들 가운데 외모나 말투, 걸음걸이 등이 큰 형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도 불렸다. 고인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정주영 명예회장을 꼽았다.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했던 경영자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