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쪽방촌'처럼…정부가 수용권 행사해 도심정비 속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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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단의 주택공급 대책…어떤 내용 담기나“서울 도심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충분하다.”
도심 권리관계 복잡한 지역, 공공이 개입해 개발사업 진행
재개발·재건축은 주민동의 요건 낮추고 인센티브 부여 예상
토지수용 과정서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주민 반발 거셀 듯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작년 말 취임식에서 “시장의 공급 부족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며 강조한 말이다. 4일 발표되는 이번 정부의 25번째 부동산 대책에 서울 도심에서 30만 가구, 전국 85만 가구라는 대규모 공급 물량이 담기는 이유다.변 장관은 공급 확대를 위해 ‘공공 주도 개발’ 카드를 꺼냈다. 기존 공공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면서 역세권 고밀 개발까지 공공이 참여해 속도와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영등포 쪽방촌 정비사업 모델’을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정부가 직접 세입자 이주와 각종 권리 갈등을 풀어 신속한 개발을 유도하기로 했다.
“법 개정해 정부 주도로 도심 개발”
3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정부의 인허가권 행사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법 개정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세권 고밀 개발과 저층 주거지, 준공업지 등의 개발을 위해 정부가 직접 인허가권을 쥐고 사업을 끌어가기 위해서다.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시·도지사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을 정비사업 공공시행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정권자에 국토부가 추가될 경우 사실상 중앙정부가 직권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이 경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할 수도 있다. 지난해 시작된 ‘영등포 쪽방촌 정비사업(1만㎡)’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나서 원주민이 임시로 살 시설을 마련해주는 등 갈등을 풀면서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등포 쪽방촌 개발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당시 변창흠 LH 사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영등포 쪽방촌 사업처럼 해당 지역을 ‘공공주택 특별법’을 활용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할 수도 있다”며 “이때 최소한의 동의율 기준을 마련한다면 토지 수용에 대한 반발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토지 수용과 인허가권 행사 등에 나설 경우 그동안 정체됐던 낙후 지역의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개발·재건축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을 낮추는 방안도 거론된다. 조합 설립(75%) 및 공공시행자 지정(66.7%)에 필요한 동의율을 낮추면 정비사업을 통한 새 아파트 공급을 앞당길 수 있다. 동의율을 충족하지 못해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사업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역세권 지역은 307곳에 달한다. 국토부는 최근 역세권 용적률을 최대 700%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전까지 역세권은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용적률이 최대 400~500% 적용됐는데, 이를 준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이다. 용적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가구 수도 증가하게 된다.서울에서 다가구·다세대 등 저층 주거 밀집 지역은 111㎢ 정도다. 준공업지역은 경기 분당신도시와 비슷한 20㎢ 규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용적률 상향, 일조권 및 주차장 규제 완화 등이 적용되면 사업성이 좋아지는 사업지가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 갈등 조정만 해줘도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 상당수”라고 했다.
역세권 고밀 개발 등이 이뤄지면 서울에서 30만 가구를 새로 공급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국토부의 판단이다. 이 같은 개발 방식을 지방 대도시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85만 가구까지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그러나 정부 주도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사업 속도를 위해 수용권 등까지 거론되고 있어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도 커질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정 동의를 전제로 한다지만 정부가 토지수용권을 쓴다는 것은 1980년대 용역을 통한 강제 철거를 떠올리게 한다”며 “각종 소송 등 법적 분쟁이 잇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개발할 수 있는 땅은 다 모아도 모자라니 민간 땅을 개발하기 위해서 직접 나서는 것 같다”며 “지자체가 인허가권을 가진 곳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진석조미현/전형진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