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팬’ 에 찍히면 서울시장 후보 못되는 與 딱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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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文 박영선·우상호 “원조 친문” “친문 적자”외치며 文心 잡기 경쟁[홍영식의 정치판]
“당이 특정 계파에 장악돼 민주주의 사라졌다” 비판 제기돼

왜 그럴까. 우선 제도적인 측면을 보면 민주당 당 경선은 권리당원 50%, 여론 조사 50%를 반영해 후보를 뽑는다. 권리당원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내야 자격이 생긴다. 당비를 내지 않는 일반 당원과 달리 진성 당원이란 뜻이다. 이런 민주당 경선 규칙은 예비 경선에서 당원 20%, 여론 조사 80%를 반영하고 본경선 땐 여론 조사 100%로 당 최종 후보를 뽑는 룰을 정한 국민의힘과는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민주당 경선에선 권리당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여론 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지도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반면 권리당원 조사는 조직력에 좌우된다. 경선 때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한 이른바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조직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민주당에선 친문 권리당원의 입김이 도드라지게 세다. 2016년 전당 대회 때 친문 지지를 업은 추미애 후보가 비문(비문재인)의 이종걸 후보를 제치고 대표에 당선되면서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문팬(문재인 팬덤)’이 대거 권리당원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문팬’이 장악한 권리당원 잡지 못하면 경선 패배 불 보듯
2020년 ‘8·29 전당 대회’ 때도 권리당원들의 막강 파워를 재확인했다. 정세균계 중도 성향의 비문으로 꼽히는 3선 중진 이원욱 의원은 최고위원 경선에서 대의원 득표율 17.39%를 얻어 1위를 차지했지만 낙선했다. 권리당원 지지를 6.93%밖에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양향자 의원은 대의원 득표율 7.14%로 꼴찌였지만 권리당원 득표율 15.56%를 얻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삼성전자 임원(상무) 출신의 양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직접 영입했다.
국민의힘이 경선에서 일반 여론 조사 반영 비율을 대폭 높인 것과 달리 민주당이 권리당원 비율을 절반으로 그대로 두는 것은 당 여론을 선도하는 이들의 ‘입심·팬심’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4·7 재·보궐 선거’ 경선에 적용할 룰을 정할 때 여론 조사 반영 비율을 좀 높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당 일각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며 “그랬다가는 권리당원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논의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말했다.
박영선·우상호 후보가 친문 구애 경쟁에 나선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둘 다 ‘성골 친문’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누가 친문과의 거리 좁히기에 성공하느냐가 경선 판도를 좌우할 핵심 요인이다.
박 후보는 2012년 대선 경선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의원 멘토 단장을 맡았다. 당시 대선 경선에 나선 문 대통령과 다른 편에 선 것이다. 그 후 박 후보에게 ‘비문’ 딱지가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친문으로 돌아왔다. 그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유튜브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2012년에는 제가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 다녔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해단식을 할 때도 펑펑 울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약간 갈등이 있었다. 제가 그때는 문 대통령에 대해 집착하고 있을 때였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래서 삐졌다. 회의에 오라고 하면 잘 안 갔다. 속마음은 (문 대통령이) ‘좀 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찾지도 않았다.”
박 후보는 “문 대통령이 2017년(대선 때)에도 저한테 전화를 하셨다”며 “안 받았는데 (만나서) 3시간 동안 섭섭했던 얘기를 했고 (섭섭한 게) 다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원조 친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문 대통령 생일 땐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썼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문’이 아닌 완전한 ‘친문’으로 거듭났다는 뜻이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박 후보가 문재인 정부 장관(중소벤처기업부)까지 지낸 마당에 비문이라는 얘기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던 우 후보도 현재 박 후보에 뒤질세라 ‘친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적자’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27일 ‘정책 엑스포 in 서울’ 기조연설에서 자신을 ‘김대중 대통령이 영입한 민주당의 뿌리이자 적자’라고 규정하고 “어떤 위기에도 단 한 번도 민주당을 떠난 적 없이 당을 지켜 왔다”고 했다. 이어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도 역할을 다 했다”며 “문 대통령과 가장 잘 협력할 후보다. 반드시 이 선거를 승리로 만들어 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 문재인 보유국” “문 대통령과 가장 잘 협력”
지난 1월 30일 온라인 친문 커뮤니티 ‘클리앙’에 ‘안녕하세요. 클리앙 유저 여러분! 국회의원 우상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글쓰기 제한 규정 때문에 이제서야 인사를 하게 됐다”고 썼다. 또 “서울시장이 되면 문 대통령을 지키는 데 선봉에 서서 여러분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함께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이 경선 때마다 특정 계파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우선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경선 흥행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지난 ‘8·29 전당 대회’가 그랬다. 모두 극성 지지층인 ‘문심(文心)’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되다 보니 후보들 간 역동성 있는 경쟁이 사라지면서 대중의 눈을 잡지 못하는 ‘맥 빠진 경선’이 되고 말았다. 전대가 흥행은커녕 관심과 비전, 후보 간 논쟁이 없는 ‘3무(無) 경선’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특정 계파 의존은 민주주의에도 역행한다. 계파 패권주의가 만연한다면 능력 있는 다양한 후보군 형성이 어렵고 결국 당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심’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심’과는 멀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인데 특정 ‘팬덤’이 당을 장악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가 발 붙이지 못하게 한다면 권의주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 지도자와 팬덤이 직접적으로 결합해 여론 수렴부터 의사 결정권까지 모두 장악한 정당은 ‘대중 독재’, ‘민중 독재’와 다를 바 없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