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동거, 오묘한 변화…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다
입력
수정
지면A17
Cover Story - 나와 고양이고백하건대 나는 ‘욜로(YOLO)’족이었다. 과거형인 것은 러시안블루 종의 고양이 ‘콜라’와 ‘환타’를 데려온 2019년 여름 이후 삶이 확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진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고, 저축보단 나를 위한 소비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고양이를 집에 들인다는 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함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큰 변화가 필요한 일이었다. 가계부 내역이 달라졌고 술 마시는 횟수도 줄었다. 잡념과 계산이라곤 전혀 없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볼 때면 ‘아, 저들의 세상엔 오로지 나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헌신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됐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과 달리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은 특별히 집사라고 부른다. 개는 사람을 잘 따르는 반면 고양이는 도도해서다. 모시고 살아야 할 만큼 자존감이 확고하다. ‘주인’인 고양이 두 분을 모셔야 하는 집사로서, 나는 영양가 듬뿍 담긴 간식을 사고 고급 모래를 화장실에 들였다. 매일 밤 놀아주고 양치를 시킨다. 마사지를 해주며 아이들과 교감하는 데 공을 들인다.고양이의 매력에 빠진 건 동서고금 예외가 없다. 유명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면 또 한 마리를 기르게 된다”고 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방법은 음악과 고양이뿐”이라고 고백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인생에 고양이를 더하면 그 힘은 무한대가 된다”고 한 것만 봐도 고양이의 매력은 상상 이상이다. 국내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가수 지드래곤, 배우 유아인 등 ‘유명인 집사’가 많다. 도도하면서도 애교 부릴 줄 아는, 삶의 의지가 없어 보이다가도 사냥(놀이)을 할 땐 눈빛이 달라지는 고양이는 다중적인 현대인과도 닮아 있다. 성공을 위해 질주하고, 때론 한없이 외로움을 타고, 그러다가 누군가의 뜨거운 관심을 갈구하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내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과연 지금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다른 생명체를 책임질 만큼 견고한 삶의 터전을 마련했는가, 나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품을 지녔는가,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뿌리가 깊고 단단한가.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이런 생각은 나 아닌 타자를 위해 희생하는 삶에 대한 고찰, 나아가 사육동물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기 안주에 술 마시는 걸 제일 좋아하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직은 관심 수준이지만 학대받는 동물 이야기가 가슴 찢어지게 아픈 걸 보면 머지않아 실행에 옮기지 싶다. ‘콜라’와 ‘환타’가 내 인생을 바꾸고 있다.
프로 집사 24시간이 모자라
눈 뜨면 물·사료 채워주고 매일 자기 전엔 사냥놀이
정소람 집사의 하루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밥그릇이 비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새 사료를 채워준 뒤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한다. 물그릇도 출근 전 갈아준다. 신선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물을 갈아주려고 노력한다.외출 후 돌아왔을 땐 하루종일 기다린 ‘망이’와 ‘난이’(사진)와 놀아준다. 낚싯대나 레이저 포인터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흥미가 사라질 때까지 놀아준다. 발톱이 길었다 싶으면 자기 전 정리해준다.민지혜 집사의 하루아침엔 닭고기, 소고기, 연어 등 생식을 위한 습식 사료를 준다. 여기에 식이섬유, 유산균 등의 영양제를 타주고 저녁엔 오메가3가 들어간 간식을 준다.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청소해주는 것도 하루 일과다.매일 저녁에 빼놓지 않는 일은 치아 건강을 위한 양치질과 마사지, 발바닥 관리다. 2~3주에 한 번씩 빗질, 발톱 정리와 함께 털을 씻겨준다. 낚시를 좋아하는 ‘환타’는 낚싯대 장난감으로, ‘콜라’는 양모공과 레이저로 놀아준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