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거세지는 무역전쟁, 우리 기업의 대처법은
입력
수정
김태주 KPMG관세법인 상무전 세계적으로 양자간·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꾸준하게 진행되었던 자유무역주의 기조는 2017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일본, 캐나다 등 총 12개국과 추진 중이던 다자간 FTA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일방적으로 이탈했다. 2018년에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산물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통해 본격적인 미·중 무역전쟁의 막을 열며,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보호무역주의를 급격하게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보호무역주의는 이후 미국-유럽연합(EU), 인도-중국 무역분쟁 등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과 이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보호무역주의에 불을 지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제치고 당선된 조 바이든 역시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추구해온 한국은 세계적 자유무역주의의 흐름을 지렛대 삼아 무역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보호무역주의 기류는 한국에 결코 유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코로나19까지 겹친 전쟁터와 같은 통상환경은 국내 기업들에게 분명한 위험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통상환경 변화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분명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내 기업들에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급변하는 통상환경의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기업 내부 프로세스의 구축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니터링은 공급망관리(SCM) 관점을 기반으로 국제무역거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에서 발생가능한 이슈를 SCM 라인에 있는 모든 국가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며, 해결방안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역분쟁은 기본적으로 관세를 도구 삼아 펼치는 전쟁이다. 관세는 제품의 원가를 구성하는 세목으로 수입물품별로 부과되므로 원재료·중간재·완제품을 구분하지 않고 부과된다. SCM 라인에 있는 한 국가에서 통상이슈가 발생하면, 그러한 이슈는 필연적으로 SCM 라인에 있는 다른 국가, 나아가 완제품의 가격경쟁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본사 차원에서 해외소재 현지법인들의 통상이슈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방안을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하는 이유다.
실시간 모니터링의 범위에는 향후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포함돼야 한다. 보호무역주의, 무역전쟁은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는 특히 예고없이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무역전쟁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철저한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한 대응 시나리오 준비가 요구된다.
선제적 대응을 통해 통상환경의 변화를 극복한 사례도 있다.# 중국 현지법인에서 특정물품을 생산해 미국 판매법인으로 수출하던 한국 A사 본사는 실시간 통상환경 모니터링을 통해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통상법 제301조 조사 명령(미국이 보유한 지적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중국산 물품에 추가 관세 부과)을 고려하고 있다는 정보와 중국 법인이 생산한 특정물품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정보를 확인 후 이러한 조치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A사는 현재 SCM 라인을 유지하는 경우 미국 판매법인의 25% 추가 관세 부담은 불가피하고, 이 같은 예상치 못한 원가 증가는 미국 시장 가격 경쟁력에 치명상을 입힌다고 결론 내렸다. A사는 무역전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중국 외 타국 소재 생산법인의 기존 생산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원자재나 반제품만을 생산하고, 한국 등에서 완제품을 생산 후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최종생산국을 중국이 아닌 한국으로 변경한 것만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최종 생산된 물품이 미국 기준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중국산 제품의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한 우회수출로 간주된다. 원산지란 물품의 국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순히 최종생산국이 아니다. FTA 조약이나 미국 국내법 등 무역분쟁에 따른 추가 관세를 부여조치하는 데는 원산지를 판정하는 세부 결정 기준을 두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원산지를 판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실질적 변형' 기준이다. 실질적 변형 기준은 제품의 본질적인 특성을 부여할 정도의 공정을 수행한 국가를 원산지로 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산 원재료 내지 반제품 수입한 후 수행한 공정이 제품의 본질적인 특성을 부여할 정도의 공정이라고 인정받아야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재 기업들은 변동성(Volatile)이 크고 불확실(Uncertain)하며 복잡(Complex)하고 모호한(Ambiguous) 상황에 처해있다는 뜻의 'VUCA'라는 신조어가 나올만큼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변화를 안이하게 인식하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면, 향후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선제적 검사를 통한 격리 조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통상환경 변화에 대해서도 선제적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껴야 할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