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동 정책 뒤집는 바이든…"예멘서 사우디 지원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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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무부 방문서 "사우디 공격 지원 멈출 것"지난달 말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중동 전략을 크게 바꾸고 있다. 6년여간 이어지고 있는 예멘 내전에서 그간 미국이 해온 사우디아라비아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예멘 내전은 중동에서 이슬람 수니파 좌장국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격인 이란간의 대리전으로 통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에서 다자주의 기반 ‘균형잡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멘 내전, 사실상 사우디·이란 대리전
보다 다자주의적 접근…이란핵합의 복귀 가능성도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취임후 처음으로 미 국무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예멘 내전은 끝나야 한다”며 “이같은 미국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미국은 예멘 내전에 관한 모든 공격 지원을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무기 판매에도 적용되는 조치”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모두 뒤집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군에 무기와 물자 등 각종 지원을 해왔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예멘 내전은 사실상 사우디와 이란간 대리전으로 통한다. 각 세력을 주변 열강들이 지원하면서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 예멘 정부군은 사우디가, 예멘 정부와 함께 싸우는 예멘 남부 분리주의 세력은 아랍에미리트(UAE)가 지원한다. 예멘 정부에 맞서는 후티 반군은 친(親)이란 무장세력이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예멘 내전을 두고는 국제사회와 미국 민주당 등에서 비판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의 물자개입에 힘을 입은 사우디가 대규모 폭격을 벌이면서 예멘에서 민간인 살상 피해가 크게 늘고있다는 지적이다. 2019년엔 미국 민주당이 미국의 예멘 내전 개입을 중단하는 결의안을 상정했으나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앞서도 예멘 내전에 대한 미국 방침을 바꿀 것을 시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7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예멘 국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말 사우디와의 무기수출을 잠정 중단하고, 기존 계약도 재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19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전 마지막 조치 중 하나로 처리한 사우디 무기 수출을 차단하는 조치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조치를 미국이 2015 이란핵합의(JCPOA) 복귀를 점치는 시도로 보고 있다. 일방적인 사우디 편들기 강도를 줄여 이란이 대화에 나설 수 있게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이란핵합의 복귀 가능성은 작년 8월 미국 민주당 정강위원회 공약 이후 급부상했다. 민주당은 당시 이란이 핵합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전제 하에 미국이 합의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강정책은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 방향을 시사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주의적 외교정책을 표방하는 것도 미국이 이란핵합의 관련 사안에 더 유연한 접근법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란핵합의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나왔다. 바이든 대선 캠프 외교·안보 진용의 핵심이었던 블링컨 국무장관은 당시 이란핵합의 체결 주역 중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에도 “친이란 무장세력으로부터 중동 동맹국들을 계속 보호하겠다”고 했다. 이란에 대한 압박을 줄이지만, 기존 동맹인 사우디와의 관계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는 친이란 세력의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등 여러 위협을 받고 있다”며 “미국은 사우디가 주권과 영토를 보전하고 국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