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도, 집도 국가가 공급"…'대네수엘라 망령' 스멀스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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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가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분양권 상한제,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등 규제를 쏟아내자 부동산 시장에서는 '대네수엘라(베네수엘라+대한민국)'란 말이 유행어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이 임대료, 임차 갱신부터 매매·분양까지 정부가 통제하는 베네수엘라를 닮아간다는 얘기였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난 4일 2025년까지 83만6000가구 주택을 신규 공급하겠다는 2·4 대책을 내놨다. "무리한 수요 억제, 가격 통제로 시장을 왜곡시키지 말고 부동산 공급부터 늘려라"는 시장 요구를 늦게나마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각론을 살펴보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공공기관이 재개발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방법을 통해 공급 확대를 달성하겠다는 것이어서다. 공급 대책마저 "정부 개입, 정부 주도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공 개발 지역 부동산 취득 시 입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나 주민 3분의 2 동의만 있어도 개발 사업을 강행할 수 있게 한 점 등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건축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자신의 자산을 정부에 맡기고 사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잃는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며 "일부 사업성이 낮은 지역 외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가 개입해야 해결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실효성 낮은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재산권 침해 요소도 곳곳에 있다. 우선 토지소유주 3분의 2만 동의해도 공공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한 점이 논란이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필요 동의율(4분의 3)보다 낮춘 것이다. 민간 사업의 경우 지역에 따라 80~90%까지 필요 동의율이 오르기도 한다. 반면 공공 개발 사업은 주민 3분의 1이 반대해도 정부가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억울하게 땅을 뺏기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대책을 발표한 4일 이후 공공 개발 사업 구역 내 부동산을 매입하면 우선공급권, 즉 입주권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도 논란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이 공공 개발에 포함될지 혹은 후보지이긴 하나 최종 사업 인가가 날지 알 수가 없는데 거래를 제한한다니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이 규제에 따라 입주권을 박탈시키는 사례가 나오면 위헌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작년 시행한 규제들은 베네수엘라와 더 비슷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작년 7월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베네수엘라가 2009년 주택 분양 시 소비자물가 상승률 반영을 금지한 대책과 닮았다. 베네수엘라는 2011년 '부동산사기방지법'을 통해 정부 허가를 받은 주택만 분양·매매가 가능하게 했다. 한국도 작년부터 토지거래허가제 적용 지역을 서울 잠실동·삼성동·대치동·청담동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2003년부터 9년간 모든 임대료를 동결하고, 2011년부터 임차인이 새 집을 얻을 때까지 퇴거를 금지시켰다. 이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한국도 전월세 상한제(5% 이상 인상 금지), 계약갱신청구권제(추가 2년 계약 갱신 보장) 등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부 개입이 강화될수록 부동산 가격은 더 뛰고 각종 피해 사례만 늘어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례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보다 5.36% 올라 9년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모든 것을 국가가 개입하고 주도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환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시장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난 4일 2025년까지 83만6000가구 주택을 신규 공급하겠다는 2·4 대책을 내놨다. "무리한 수요 억제, 가격 통제로 시장을 왜곡시키지 말고 부동산 공급부터 늘려라"는 시장 요구를 늦게나마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각론을 살펴보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공공기관이 재개발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방법을 통해 공급 확대를 달성하겠다는 것이어서다. 공급 대책마저 "정부 개입, 정부 주도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공 개발 지역 부동산 취득 시 입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나 주민 3분의 2 동의만 있어도 개발 사업을 강행할 수 있게 한 점 등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2·4대책 곳곳에 사유재산 침해 요소
2·4 대책의 핵심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직접 시행하는 정비사업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재개발·재건축은 토지 소유주가 조합을 설립해 추진하지만, 공공 사업은 공공기관이 주민 동의를 얻어 토지를 확보하고 직접 시행한다. 조합이나 추진위원회 없이 정부가 직접 개발하겠다는 얘기다.재건축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자신의 자산을 정부에 맡기고 사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잃는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며 "일부 사업성이 낮은 지역 외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가 개입해야 해결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실효성 낮은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재산권 침해 요소도 곳곳에 있다. 우선 토지소유주 3분의 2만 동의해도 공공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한 점이 논란이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필요 동의율(4분의 3)보다 낮춘 것이다. 민간 사업의 경우 지역에 따라 80~90%까지 필요 동의율이 오르기도 한다. 반면 공공 개발 사업은 주민 3분의 1이 반대해도 정부가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억울하게 땅을 뺏기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대책을 발표한 4일 이후 공공 개발 사업 구역 내 부동산을 매입하면 우선공급권, 즉 입주권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도 논란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이 공공 개발에 포함될지 혹은 후보지이긴 하나 최종 사업 인가가 날지 알 수가 없는데 거래를 제한한다니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이 규제에 따라 입주권을 박탈시키는 사례가 나오면 위헌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정부만능주의 집착 버려야"
이런 요소들 때문에 또 한번 베네수엘라가 떠오른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기본적으로 행정부 산하 주택부가 대부분 주택 개발사업을 직접 발주·하고 수행한다. 2010년부터는 57개 사업을 시작으로 민간 주택개발에도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의 경우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가 있어야 공공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만, 향후 사업이 지지부진하면 정부 개입이 강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작년 시행한 규제들은 베네수엘라와 더 비슷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작년 7월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베네수엘라가 2009년 주택 분양 시 소비자물가 상승률 반영을 금지한 대책과 닮았다. 베네수엘라는 2011년 '부동산사기방지법'을 통해 정부 허가를 받은 주택만 분양·매매가 가능하게 했다. 한국도 작년부터 토지거래허가제 적용 지역을 서울 잠실동·삼성동·대치동·청담동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2003년부터 9년간 모든 임대료를 동결하고, 2011년부터 임차인이 새 집을 얻을 때까지 퇴거를 금지시켰다. 이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한국도 전월세 상한제(5% 이상 인상 금지), 계약갱신청구권제(추가 2년 계약 갱신 보장) 등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부 개입이 강화될수록 부동산 가격은 더 뛰고 각종 피해 사례만 늘어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례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보다 5.36% 올라 9년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모든 것을 국가가 개입하고 주도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환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시장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