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백신 '고령층 접종' 판단유보…접종계획 시작부터 차질 빚나

중앙약사심위원회, 유럽서 효과 논란에 최종 판단 질병청으로 넘겨
식약처 최종점검위원회·질병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 통해 결정
"고령층 접종유보땐 전체계획 엉망", "어떻게든 접종 시작해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65세 이상 고령층 접종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최종 결정을 질병관리청으로 넘김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 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식약처는 5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두 번째 전문가 자문 단계인 중앙약심 회의 결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만 18세 이상에는 허가하되 만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는 추후 질병청의 예방접종전문위원회(예방접종위)에서 논의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코로나19 백신 안전성 및 효과성 검증 자문단(검증 자문단), 중앙약심, 최종점검위원회로 이어지는 '3중'의 전문가 자문 절차를 밟고 있는데 중간 단계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 중앙약심 "고령층 접종 효과에 대한 자료 충분치 않아 신중하게 결정해야"
중앙약심은 "만 65세 이상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여부는 효과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면서 핵심 쟁점인 고령층 접종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이는 앞서 지난 1일 1차 전문가 자문 회의인 검증 자문단에서 만 18세 이상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접종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을 낸 것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것으로, 사실상 최종 판단의 책임을 질병청으로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입장은 유럽에서 고령층 접종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유럽연합(EU)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조건부 판매를 공식 승인했으나 독일, 프랑스 등은 고령층에 대한 백신 효능 증명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만 65세 미만에 대해서만 접종을 권고했다.또 벨기에는 접종 대상자의 연령을 55세 미만으로 더 낮췄다.

아울러 이탈리아는 애초 55세 미만에 대한 우선 사용을 권고했다가 최근 55세 이상이라도 건강하다면 이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수정된 의견을 내놨다.

특히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스위스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승인을 아예 보류하고 추가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백신접종 계획 차질 가능성…"고령층 접종 못 하면 예방접종 계획 엉망 될 것"
식약처와 중앙약심의 결정 직후 질병청은 "식약처의 최종 허가·심사 이후 그 결과를 반영하고, '코로나19 백신분야 전문가 자문단' 검토와 '예방접종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65세 이상 어르신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유럽에서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양약심마저 신중한 결정 필요성을 제기함에 따라 질병청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아직 식약처의 마지막 심의 단계인 최종점검위원회의 일정도 구체화되지 않은데다 이후 질병청의 예방접종위 결정까지 거쳐야 한다면 당장 이달 말 접종 시작까지는 남은 시간이 아주 촉박하다.

백신접종이 시작부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달 말부터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사·간호사·병원 종사자 등 의료진과 65세 이상 고령층이 다수인 요양병원·시설 입소자 등을 상대로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 가운데 코로나19 의료진은 백신 공동구매·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확보한 화이자 백신을, 고령층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받는 것으로 거의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접종 불가 결정이 날 경우 초기 접종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료진만 우선 접종을 받고, 고령층에 대해서는 모더나 등 다른 백신이 들어오는 시점까지 접종을 늦춰야 할 수도 있다.

현재 각 제약사가 직접 공급하는 백신의 국내 도입 시기는 아스트라제네카(1천만명 분)는 1분기부터, 얀센(600만명 분)과 모더나(2천만명 분)는 2분기부터, 화이자(1천만명 분)는 3분기부터로 각각 잡혀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접종 결정이 나더라도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커 접종 과정에서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1분기 의료진과 요양병원 등의 고령층, 2분기 65세 이상 노인, 3분기 18∼64세 성인 등의 순으로 오는 9월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차 접종을 마치고, 11월까지는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전체 백신 접종 계획이 순항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 "백신접종 허가 판단은 식약처 역할, 제 역할 해야", "어떻게든 접종 시작해야"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원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다른 백신보다 먼저 고연령층, 요양병원·요양시설 있는 분들에게 우선 접종하기로 한 것인데 만약 65세 이상에 대해 접종하지 못하면 예방접종 계획이 엉망이 된다"며 "예방접종위는 약에 대한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조직이 아니고, 접종하느냐 마느냐의 판단은 식약처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식약처의) 결정이 애매하다"며 "식약처는 백신 허가를, 질병청은 사용 범위를 정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하고 있는데 식약처가 해야 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식약처의 최종점검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또 결국 65세 이상 접종 여부 결정은 예방접종위 논의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향후 예방접종위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 임상 참여자 수가 660명으로 화이자·모더나에 비해 너무 적다는 점을 고려해 안전성을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고령층을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된 영국 등의 데이터로 볼 때 국내 접종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식약처가 아주 신중한 입장에서 근거(자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이미 영국에서는 고령층 대상 접종 이뤄지고 있고, 한 달 정도 되면 (국내 접종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충분한 데이터가 쌓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단 영국과 유럽 당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승인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에 신중하자는 입장을 가진 국가는 화이자 백신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없기 때문에 위험과 이득을 계산했을 때 어떻게든 접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도 "이미 영국에서 대대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실제로 맞은 사람들도 많다"며 "이상반응이 있었다면 이미 보고가 됐겠지만, 그런 보고는 없었다"고 전했다.

기 교수는 "안전성 문제는 이상반응으로 살펴봐야 하는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임상시험에서는 고령층 대상자가 적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현재 많이 접종하고 있고 이상반응 보고도 없는 만큼 안전성은 확인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기 교수는 유럽 일부 회원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접종을 제한한 데 대해서는 "국가별로 어떤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정책을 시행한 것"이라고 답했다.그는 가장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노바백스 백신을 고령층에 접종하자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는 "예방 접종을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하는 대상은 고령층인데, 노바백스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안 된다"면서 "예방접종은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므로, 사망 위험이 높은 고령층부터 가용한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