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게 묻다] 안정효 "아이들 공부시키지 말아야 지혜 얻어"

소설가이자 번역가…《읽는 일기》펴내
“나보다 먼저 태어난 책 번역 안 해…남들이 안 읽는 책 소개
아이들이 공부 대신 생각하게 만들어야
가르치는 대로만 읽으면 지식에 머물러
지식을 내면화해야 지혜로 승화”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애들 공부시키면 안 됩니다. 억지로 책을 읽으라 해서도 안 되요.”

국내 영문학 번역 거장이자 《하얀 전쟁(영문명 The White Badge)》 《은마는 오지 않는다(영문명 The Silver Stallion Will Never Come)》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안정효 씨(80)는 서울 불광동 자택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최근 신간《읽는 일기》(지노)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터라 매우 의아했다. 안씨와 그의 가족은 하나같이 외국어 엘리트다. 부인 박광자 충남대 명예교수는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하다. 쌍둥이 딸들 역시 어학 천재다. 장녀 안미란 씨는 영어와 독일어, 핀란드어 등 13개 국어를 구사한다. 차녀 안소근 씨 역시 7개 국어를 한다. 그런데 왜 저렇게 말했을까. 다음은 안씨와 나눈 일문일답.
▷선생님께서 “공부시키면 안 된다” 하시니 왠지 와 닿지 않습니다.

▶“별 뜻 아닙니다. 숨 좀 쉬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책 읽는 걸 중노동처럼 시키면 안 되요. 이번 책도 ‘하루 한 꼭지씩 읽기’잖아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양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왜 일기 형식으로 쓰셨나요.

▶“정확히는 일기와 조금은 다릅니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영문 책에서 좋은 문장들을 모아 왔어요. 제가 일상적으로 써 온 글에 어울릴 만한 문장을 골라서 맞췄어요.”

▷인생의 어느 시기에 초점을 맞추셨나요. ▶“이번 책은 태어났을 때부터 서른 살까지의 시기입니다. 인생을 아흔 살까지 산다고 본다면 초반 3분의 1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로 두 권 더 낼 생각입니다. 두 번째는 서른 살에서 예순 살까지, 마지막 권이 예순부터 아흔 살까지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자유입니다. 아이들에겐 생각하고 질문할 자유, 어른에겐 꼰대가 되지 않을 자유. 그 자유를 누리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예를 들면 어떤 문장일까요.

▶“로마 철학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한 말이 있어요. ‘가르치는 자의 권위는 배우기를 원하는 자에게 걸핏하면 방해가 된다.(The authority of those who teach is often an obstacle to those who want to learn.)’ 뭘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는 걸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걸 소화해서 남들이 못하는 생각을 해 내야 하죠. 이번 책엔 아이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앞선다는 걸 강조하는 문장들이 많아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계십니까.

▶“저도 거기서 자유롭진 않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쓸 뿐이죠. 전 저보다 먼저 태어난 책은 번역하지 않아요. 제가 처음으로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한 책들이 많죠. 1975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데뷔했을 때도 그랬어요.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책이란 무엇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 책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는 것이죠. 같은 책이라도 독자들마다 다 다르게 읽어요. 그게 책 읽기의 묘미죠. 그걸 방해하는 순간 책은 수갑이 되어 버립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