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탄핵안 처리 해놓고 "칼 날 위에 섰다"는 민주당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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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文들의 우려…"헌재 탄핵안 각하 땐 재·보궐선거 큰 타격"“솔직히 후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탄핵에 찬성했지만, 칼 날 위에 섰다. 차라리 본회의 표결 때 부결됐으면 좋았을 걸….”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정치 중립 훼손 논란까지 겹쳐
권력형 수사 드라이브 거는 검찰 '민주적 통제' 힘들어져
여권에 불리한 법원의 잇단 판결에 '위기감' 감돌아
"공무원, 권력형 수사 윗선 보호 않을 것"…레임덕 걱정도
더불어민주당의 비문(비문재인)계 3선 의원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4일 국회를 통과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탄핵 자체의 유효성 논란에 더해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까지 겹친데다 탄핵 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각하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걱정이 적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비문을 중심으로 내심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선 여론이 좋지 않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가 건강을 이유로 사표를 낸데 대해 “국회가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라고 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또 탄핵 거론 사실을 부인하다 거짓말 한 게 들통나면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3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수장이 판사 탄핵을 추진해 온 민주당과 주파수를 맞췄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더욱이 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혐의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주당 일각에서 더 걱정하는 것은 탄핵에 대한 각하 가능성이다. 헌법 65조 1항엔 법관 탄핵 소추 의결 조건으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탄핵의 목적은 공무원을 추방하는 것인데, 퇴직 이후라면 탄핵 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헌재가 각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임 부장판사는 오는 28일 판사직을 그만둔다. 헌재가 탄핵 심리를 서두르더라도 그때까지 끝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만 탄핵 심판 사건의 주심 재판관에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이석태 헌법재판관이 지정된 게 변수란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여당 일각에선 헌재가 각하 결정을 하든, 임 부장판사 퇴직 이후에도 심판 절차를 밟든 어떤 경우라도 여당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임 부장판사 탄핵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아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은 한 의원은 “각하 결정이라도 난다면 4월 7일 서울시장 선거는 아주 불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선거 패배 결과가 나온다면 강경파 의원들의 기세에 밀려 탄핵을 수용한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물론, 당이 위기에 빠지고 이게 레임덕으로 가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설령 헌재가 각하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임 부장판사 퇴직 이후라도 심판을 지속한다고 해도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 등과 겹쳐 여론이 여당에 호의적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임 부장판사가) 퇴임하면 어떤 소송에 대한 요건 자체가 불비하게 되니까 각하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꼭 그렇데 보기 어렵다”며 “헌법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헌재가)본다면 (퇴임 이후라도)본안 판단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과정을 보면 민주당의 비민주성도 도마에 오른다. 탄핵소추안 내용도 확정되기 전 의원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상당수 의원들은 탄핵안 내용도 모른 채 서명한 것이다. 발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의원들은 친문 강성지지자들의 항의 문자 폭탄까지 받았다. 친문 핵심인 윤건영 의원조차 발의안에 서명하지 않았다가 이들의 공격을 받았고, “탄핵안에 찬성하겠다”고 했다. 비문 정세균계인 이원욱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법관 탄핵이 (민주당에) 역풍을 불러올 수 있어서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판사 탄핵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애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당 강경파들과 친문 강성 지지자들에 밀려 ‘의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당론 표결을 수용했다. 발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또 다른 의원은 “의원들 중 후폭풍을 우려해 탄핵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지만, 친문 강경파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려했다”고 했다.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달 28일 의원총회에서 “탄핵 문제가 2월 임시국회 쟁점이 될 경우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 처리도 어긋날 수 있다”는 취지로 탄핵에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강경 목소리에 묻혔다. 민주당은 지난해 ‘8·29 전당대회’때도 대표·최고위원 경선 후보들이 지나치게 친문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전도 예외가 아니다. 박영선·우상호 후보는 앞다퉈 친문 구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당이 특정 계파에 의해 완전히 장악돼 조금의 다른 의견도 용납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민주당에 ‘민주’가 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탄핵 시기도 논란거리다. 민주당 내에선 지난해 4월 총선 전부터 탄핵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탄핵을 본격 추진하지는 않았다. 판사 출신의 이탄희 의원과 김용민 의원 등 일각에서 탄핵 주장을 했지만 지도부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찰 개혁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또 당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 국면에서 추 전 장관에 힘을 싣는 데 온힘을 기울이면서 탄핵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지난해 말 상황은 달라졌다. 추-윤 갈등이 윤 총장 승리로 끝난데다 여권에 불리한 잇단 판결이 나오면서다. 탄핵 얘기가 나온지 1년만에, 그것도 임 부장판사 퇴직이 임박한 시점에서 여당이 탄핵소추안을 급작스럽게 밀어붙였다. 여당은 지난달 28일 의원총회에서 탄핵을 결의한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탄핵 증거 조사도 생략한 채 지난 2일 소추안의 본회의 보고, 4일 국회 처리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여당이 이렇게 속전속결로 탄핵을 서두른 의도에 대해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항소심 징역 2년형,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 정지 인용,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유죄 판결,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1심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 법원에서 여권에 불리한 판결이 줄줄이 나온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당이 더 걱정하는 것은 검찰이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에 대한 수사를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여당 관계자는 “추 전 장관이 물러나면서 검찰과의 싸움은 이미 게임이 끝났다. 윤 총장이 임기가 끝나는 7월까지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이라며 “그런 판에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현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사건 수사만 하더라도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앞으로 윗선으로 수사가 향할텐데 공무원들이 과연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례에서 보듯 정권 말 공무원들은 책임을 위로 미룰 가능성이 크고, 백 전 장관 영장 청구는 그 단초”라며 “여당의 판사 탄핵 추진은 정권 차원의 방어막 치기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