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 위스키 세계화 이끈 상사맨…ESG 눈돌려 '탄소배출 제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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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일본 주류·음료 제조업체 산토리홀딩스는 1899년 설립 이후 한결같은 기업철학을 갖고 있다. 좋은 술과 음료수의 기본이 되는 고품질 청정수에 대한 집념이다. 도리이 신지로 산토리 창업주는 최상급 물을 찾아 일본 방방곡곡을 탐사할 정도였다.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가 들어설 부지를 찾아나선 것이다. 그가 1923년 증류소를 세운 곳은 16세기에 영업을 시작한 일본 최초의 찻집이 있을 정도로 청정수로 유명한 야마자키 지역이었다. 이런 고집스러운 철학은 산토리 최초의 전문경영자인 니나미 다케시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이어졌다.
니나미 다케시 산토리홀딩스 CEO
'벼랑끝' 산토리 구원투수로
깨끗한 환경에서 미래를 보다
핵심은 '투명성과 기술투자'
창업정신 지키는 산토리의 구원투수
니나미 CEO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를 겪고 벼랑 끝에 몰린 산토리의 구원투수로 2014년 등판했다. 설립 이후 115년 동안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던 산토리가 외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처음 맡긴 것이어서 화제가 됐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산토리 CEO로 취임하기까지 33년 동안 미쓰비시상사에 몸담은 ‘미쓰비시맨’이었다. 1981년 미쓰비시에 입사해 외식사업팀장을 거쳐 2002년 미쓰비시의 자회사인 편의점 체인 로손으로 옮겼다. 초기에는 고문으로 일하다가 2005년 로손 사장에 올랐다.미쓰비시에서 식음료업계 관련 경험을 두루 쌓은 니나미 CEO는 산토리의 철학을 최근 각광받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철학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글로벌 이사회’ 행사에 참석해 산토리의 핵심 가치로 지속가능성을 내걸었다. 환경오염에 적극 대응해 꾸준히 좋은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산토리는 2030년 음료수병을 100%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꿀 계획이다. 2050년에는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 제로(net zero)’를 실천할 예정이다.
니나미 CEO는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산토리는 최근 국제금융 협의체인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를 위한 태스크포스(TCFD)’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2015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요청으로 설립된 TCFD는 세계 금융투자업계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무정보를 공시하도록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술 투자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산토리는 연료에서 친환경 플라스틱을 뽑아내고 폐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여 개 국내외 협력사와 합작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산토리는 과학자와 지방정부, 지역사회와 함께 숲 가꾸기 사업도 하고 있다. 건강한 숲이 늘어나야 질 좋은 천연수가 많이 생성된다는 판단에서다. 산토리가 보호하고 있는 숲에서는 이 회사의 연간 국내 물 소비량보다 두 배 많은 물이 생성되고 있다. 산토리는 숲 가꾸기 프로젝트를 미국 켄터키주와 프랑스 리옹 등 해외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니나미 CEO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통해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토리의 세계화 이끌어
니나미 CEO는 취임 이후 산토리의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첫해 산토리가 160억달러에 인수한 미국 주류업체 빔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고 성장을 이끌어냈다. 내년에는 빔의 본사를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옮겨 시장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그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수만 보고 있으면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컸지만 해외 기업 인수를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도와 동남아시아, 중국이 가장 흥미로운 시장”이라고 덧붙였다.산토리는 야마자키, 히비키, 하쿠슈 등 일본 전통 위스키 브랜드뿐 아니라 메이커즈 마크, 쿠르부아지에, 라프로잉, 샤토 라그랑주 등 다양한 해외 주류 브랜드까지 보유하고 있다. 영국 디아지오와 프랑스 페르노리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위스키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120개국에 300개 계열사를 두고 있으며 직원은 4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연간 매출이 2조5692억엔(약 22조7000억원)이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