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법원장 책임은 누가 묻나

김태완 지식사회부장
퇴근길에 뉴스 전문 라디오 채널을 틀었더니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한마디 한다. “헌법을 위반한 것과 기억이 안 나서 틀리게 말한 것을 놓고 법률가들이 어떻게 (대법원장을) 먼저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패널이 맞장구를 친다. “아무래도 동기다 보니 그쪽 편을 좀 드는 것도 있겠죠.” 임성근 부장판사의 동기인 사법연수원 17기 140여 명이 “(범여권 국회의원들의 논리라면)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이 선행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맞는 말도 있지만 틀리기도 하다.

헌법과 법률 위반은 논란

김 대법원장 녹취 파일 내용은 사법부 수장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탄핵할 수 있나.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의 의석수가 적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명분도 약하다. 정말 탄핵 사유가 되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헌법 65조는 (법관 등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재판에 개입한 혐의가 무죄로 판결을 받았지만, 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는 재판부의 판결문을 근거로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김 대법원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나. 그가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은 직권남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한 부장판사의 주장처럼 “사직 수리로 탄핵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 오히려 직무상 의무나 정치적 중립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도 있다”는 반론이 있다. 설사 직권남용 요소가 있더라도 임 부장판사 동기들의 성명서대로 잘못에 대한 책임은 그 정도에 상응해야 한다. 직권남용 논란으로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공세로 치부될 수 있다.하지만 ‘송구하다’는 한마디로 넘어갈 일 역시 아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그의 책임회피적 태도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는 부하를 사지로 몰면서 자기 안위부터 걱정했다. 녹취록에서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이 현실성이 없고, 심지어 탄핵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 부장판사가 1심 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사례를 들었다. 실제 그는 김 대법원장이 주도한 징계위에서도 가장 가벼운 견책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도 사표를 수리해 탄핵 논의를 중단시키면 자신이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그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의 거짓말도 문제지만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 대법원장은 하루 만에 거짓말이 드러나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사실과 다르게 답변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기억이 불분명했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임 부장판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문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법원·국회 못하면 국민이 해야

이번 사건으로 김 대법원장뿐 아니라 사법부의 위신도 크게 손상됐다. 법관징계법에는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실추시킨 법관”에 대해 징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징계하기가 어렵다. 법 조문상 대법원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대법원장 자신과 다른 대법관뿐이다. 이들이 먼저 나서 징계를 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법원은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 곳이다. 그곳의 최고 수장이 ‘거짓말을 하고 정치 눈치를 보다가’ 법원의 위신을 추락시켰다. 그런데 그냥 넘어가려 한다. 국회와 법원은 손을 쓰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국민뿐이다.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