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화보험과 소비자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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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손실 부담 상존하는 외화보험외화의 자산 안정성이 높이 평가되면서 외화 기반 금융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 외화보험은 2003년 보험료 납입과 보험금 또는 환급금 지급을 미국 통화로 하는 연금상품을 시작으로 국내에 도입됐다. 최근엔 예정 이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된 외화보험 판매가 늘고 있다. 보험회사도 포화 상태인 국내 보험시장에서 외화보험이 신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활로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불완전판매 막기 위한 노력 필요
설명의무·적합성 원칙 강화해야
한기정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
사실 외화보험은 보험금 또는 환급금을 외화로 받는다는 점에서 자녀의 유학을 계획하고 있거나 해외 거주 자녀에게 유산을 상속해 줄 생각이 있는 소비자에게는 유용하고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분산 투자를 위해 다양한 통화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는 소비자에게도 마찬가지다.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외화보험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보험료 납입과 보험금 또는 환급금 지급이 외화로 이뤄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화보험은 일반적인 보험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외화보험은 일반적인 보험상품에는 없는 위험성을 품고 있다. 즉 보험료를 분할 지급하는 경우 환율이 오르면 보험료 부담이 커질 수 있고, 환율이 내리면 보험금 또는 환급금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외화보험의 위험성에 대해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만약 소비자가 외화보험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입한다면 소비자 피해와 보험사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령자를 비롯해 외화보험의 위험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소비자에게는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아울러 환율이 오르는 경우 얻을 수 있는 환차익을 강조해서 외화보험을 보험이 아니라 환테크 수단으로 오인하게 하는 설명을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1998년 말 외화보험이 등장했고 2016년 이후부터 저금리·엔화 약세를 배경으로 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됐다. 그러나 일본의 외화보험은 파생적 요소가 포함되는 등 비교적 복잡한 구조로 돼 있는 데다 최근 고령자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외화보험 위험성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는 등의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환율 변동에 따른 원금 손실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외화 기반 원금 보장을 엔화 기반 원금 보장으로 오해한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금융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판매자가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 따라서 설명 의무가 실효성 있게 이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65세 이상 고령자 가입 비율이 2% 내외로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고령자에 대한 각별한 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령자가 아니어도 불완전판매의 안전지대라고 단언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환율 변동폭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외화보험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가입하는 것은 아닌지, 환율에 따라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환차익을 목적으로 가입하지는 않는지 등을 꼭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설명 의무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 이외에 외화보험 가입이 적합·적정하지 않은 소비자가 가입하지 않도록 적합성 및 적정성 원칙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모집 종사자부터 외화보험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한 뒤 판매하도록 교육을 강화하는 제도를 마련해 불완전판매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오는 3월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다. 보험사가 외화보험 판매를 계기로 소비자 보호에 적극 나섬으로써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소비자 민원이 많은 보험산업의 신뢰 회복을 위한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