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한국 사람이 지구를 구하는 걸 보고 싶었죠"

영화 '승리호' 조성희 감독 온라인 인터뷰

조성희 감독이 내놓은 한국의 첫 우주 SF '승리호'가 넷플릭스 공개 하루 만에 세계 영화 순위 1위에 올랐다. 화려한 수트를 빼입은 마블의 초능력자가 아니라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세금 걱정을 하는 평범한 한국 사람들이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가 말이다.
8일 온라인으로 만난 조성희 감독은 "영화를 구상할 때 가졌던 몇 가지 포부 중에는 한국 사람이 지구를 구하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며 웃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위화감 없이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는데, 검은 우주에 우주선이 날아다니는데 그 안에서 한국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낯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이 우주 SF 영화에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낯선 것은 충분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부분에서는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죠."
영화의 배경은 2092년. 중력 매트가 있어서 우주선 안에서도 걸어 다니고 꿈과 자의식이 있는 로봇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여전히 손수레를 끌고 다니고 볼트와 너트를 직접 조인다.

우주 쓰레기를 수집하는 승리호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평범한 아파트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고, 선원들은 승리호 때문에 진 빚과 세금을 걱정하고, 돈을 아끼느라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인 셈이다.
조 감독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지금 확장하는 과정에 있고, (세계 관객들에게) 그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한국말이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 할리우드만큼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0년 전 데뷔도 하지 않은 조 감독이 처음 우주 쓰레기 이야기를 듣고 구상한 영화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기본 세계관과 스토리, 인물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거의 변하지 않은 캐릭터가 유해진이 모션 캡처 연기를 한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다. 얼핏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업동이만이 매일 화려한 색감의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품 세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또 로봇인데도 숫자에 약하고 걸쭉한 남자 목소리로 구수한 말들을 내뱉는다.

조 감독은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러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했다.

목소리 더빙만 하려고 했던 유해진이 남의 움직임에 목소리만 얹는 게 어울리겠느냐며 직접 모션 캡처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조 감독은 유해진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함께 의논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함께한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한국의 첫 우주 SF 영화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건 기술적인 부분들이 아닌 디자인이었다고 했다.

조 감독은 "컴퓨터 성능과 CG 아티스트의 기술은 좋아졌고, 초기 단계부터 구현하지 못할 것 같은 건 아예 계획하지도 않았다"며 "강남 테헤란로의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에는 디자인이 들어가지 않지만, 우주선부터 작은 소품 하나까지 그럴듯하고 실제처럼 보이게 디자인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즐겁지만 고생스러웠던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던 '승리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개봉을 연기하다 결국 넷플릭스 행을 택했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기대 이상의 컴퓨터그래픽(CG) 등이 호평받으며 극장의 큰 화면과 사운드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내비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조 감독은 이에 대해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계 관객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는 건 굉장히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가 아이가 한 번 봤는데 또 틀어달라고 했다는 리뷰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고도 했다.

"작업을 마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여기서 벗어나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시즌 2에 대한 아이디어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승리호'의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승리호' 뿐만 아니라 현재 기획 중이거나 제작되고 있는 다른 우주 SF 영화들도 어서 빨리 구경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