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디지털화폐 도입 한발짝…"발행 법적근거 마련해야"

"디지털화폐, 국가서 공인하는 법화(法貨) 맞아" 해석
공식 발행 위해 한은법 손봐야
中 디지털위안화, 2022년 발행 유력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 작업이 구체화하고 있다. 디지털화폐가 국가서 인정한 통화인 '법화(法貨)' 성격을 띠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발행 근거 법률 개정도 저울질하고 있다.

한은은 8일 디지털화폐의 법적 근거를 연구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관련 법적 이슈 및 법령 제개정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은이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에게 의뢰해 작성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한은을 비롯한 중앙은행이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기술을 이용해 발행하는 가상화폐다. 기존 법정통화와 1 대 1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 시중 가상화폐와의 차이점이다.연구진은 "한은은 디지털화폐 발권력을 독점하는 동시에 강제로 통용할 수 있다"며 "'화폐의 발행권은 한은만이 가진다'는 한은법 47조로 볼 때 디지털화폐는 법적화폐로서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화폐가 법화로서 지위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달리 기존 화폐로서의 성격을 띤다는 뜻이다.

한은법 49조, 53조를 보면 한은이 발행하는 화폐를 실체가 있는 지폐와 동전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연구진은 한은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려면 이 같은 한은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디지털화폐가 동전과 지폐 등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며 "별도의 디지털화폐 발행 근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디지털화폐 위·변조를 처벌하고 압류·취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형법·민법도 손봐야 한다고도 했다.

한은은 2018년 1월 디지털화폐 연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1년 만인 지난해 1월 해체했다. 작년 2월 디지털화폐 연구팀을 재구성했고 올해 디지털화폐 유통을 위한 가상환경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연내 법률·제도 정비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TF를 꾸렸다 폐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디지털화폐 개발 속도가 더뎌졌다는 평가가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화폐 발행 필요성은 크지 않지만 발행 필요성에 대비해 연구를 본격화했다"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은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위안화의 공식 도입을 눈앞에 뒀다는 평가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발행 관련 법안을 제정한 데다 지난해부터 선전시와 쑤저우, 청두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를 언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22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직전에 공식 도입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