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의 바이오뷰] 실수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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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바이오 분야의 메인인 신약 개발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패와 실수가 많다. 바이오인(人)이라면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울 신(新)은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한 번도 세워지지 않았던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 보려는 ‘도전’이라는 대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다른 의미를 잊으면 안 된다. 처음 시도되어 새롭다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너무 어려워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설정한 목표를 충족시키거나 원했던 결과나 결론을 도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상당한 난이도가 있어 실수와 실패가 낯설지 않은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시행착오가 많은 것은
바이오 분야의 숙명
바이오 분야, 특히 신약 개발 분야에서 여러 형태의 시행착오는 드물지 않은 경험이다. 해결하려는 문제가 어려울수록, 개발하려는 물질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달성하려는 목표가 높을수록 설정된 지표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과정의 반복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임상시험이 성공적이지 못한 데는 여러 경우의 수가 있다. 물질 자체의 독성이나 효능이 목표 혹은 기대했던 것보다 높거나 낮아서, 물질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이 비교 물질에 비해 낮거나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얻지 못하는 물질 자체의 한계에 의한 것(실패) 일 수 있다. 물질과는 관계없이 실험실의 시스템이 허술하거나, 임상시험의 디자인에 결점이 있어 물질의 특성이 반영되지 못하고, 환자 모집이 불가능하거나 너무 힘들고, 환자 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인력들의 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매우 낮거나 수집되는 데이터의 관리 미흡 등 임상시험의 계획과 운용에 문제 가 있는 경우도(실수) 있다.많은 비용,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는 임상시험에서 설정된 지표를 만족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특히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 전에 장밋빛 전망이나 목표를 미리 홍보해 기업의 미래가치를 부여받는 경향이 강한 바이오 분야에서는 후 폭풍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흔한 바이오, 그 중에서도 신약 개발 분야에서 시행착오는 혁신과 발전을 위해 극복하고 승화시켜야 할 중요한 학습과정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임상시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실패한 임상시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조금 더 객관적인 논의를 위해 임상시험의 주체인 개발자와 이를 둘러싼 환경을 구성하는 과학계의 전문인력과 투자자 등 관계인으로 나누어 보자. 필자가 느끼기에는 일반적으로 만족스럽고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임상시험을 각 이해집단이 일정한 기대 수준을 맞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실패라고 속단, 규정하고 분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한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상황과 주위에서 쏟아지는 비난,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해하나 개발자에게서 바람직하지 못한 공통적인 반응을 발견하곤 한다.
첫째, 스스로 실패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이다. 개발자는 ‘임상시험이 완료되었고 마지막까지 성공적인 데이터를 도출하기 위한 분석에 최선을 다하겠다’까지만 말하는 것이 맞다. 도출된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하고 제출하는 것이 개발자의 몫이고 제출된 자료를 받아들여 검토하고 성공과 실패의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는 것은 규제기관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둘째, 임상시험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한 이유를 미리 열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임상운영기관, 치료자, 환자, 투약과 검사,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등 임상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와 경우의 수는 수없이 많다. 성공적이지 못한 지표 달성의 원인을 즉흥적이고 단편적으로 특정 변수에 돌리는 것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복합적인 다변량 분석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최근에는 임상시험에서 수집되고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의 질이 통계학적인 분석에 유효성이 있는지 검증해주는 프로그램도 출시돼 만족스럽지 못한 임상시험의 결과가 물질이 아니고 데이터의 수준에 문제가 있음을 구별할 수도 있다.
셋째, 실수를 찾아내고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종종 개발자가 수행된 임 상시험은 완벽하다고 주장하고 논리의 부족이나 어떤 결점, 또는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경우를 본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고 방어기전이다. 만일 문제가 전혀 없이 완벽하게 수행된 임상시험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도출되지 못하였다면 이는 물질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한계이기 때문에 물질을 부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즉 실패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노력과 정성으로 개발해 놓은 신약 후보물질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셈이다.
남보다 앞서가는 일, 처음 시도하는 개발 연구에서 사소하건 중대하건 실수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를 고쳐서 연구방향과 궤도를 수정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은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학습기회다. 고칠 것이 없는 이상적이고 완벽하게 계획된 임상시험이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로 완료됐 다면 이것은 물질에 대한 회생불가의 판정이 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성공적인 신약 개발을 도우려면
그렇다면 성공적인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 관계자들의 몫은 무엇인가. 실수와 실패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기다려주거나 결정해주는 단호하고 공정한 인내심과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표의 미충족이라는 결과의 원인이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실수 때문인지 아니면 물질의 한계인 실패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실수를 고쳐서 재도전하는 것을 용납하고 기다리며 격려해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동시에 정직하지 않고 진정하고 순수한 신약 개발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는, 특히 인위적 실수(조작)나 실체가 없는 언론플레이를 하는 개발자를 식별해 골라내고 징계하는 준엄한 잣대와 자정 능력도 필요하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 실수나 실패는 모두 유감스럽고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객관적이고 정직한 데이터가 반영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계를 한 임상시험의 완료는 결과에 관계없이 일단 격려와 인정, 그리고 칭찬을 받아야 하는 성과다. 발명가 에디슨 이 실패를 딛고 성공했다면 바이오 의생명 과학자들은 실수를 딛고 성공을 이루는 또 다른 발명가다.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