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흑마법으로 상징한 인종차별의 공포

장편소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에드거 앨런 포와 더불어 '호러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세계관을 모티프로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의 문학을 비틀고 비꼬는 소설이 나왔다. 미국 컬트 작가 맷 러프가 펴낸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이다.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소슬기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한다.

언뜻 보면 공포 문학의 원형을 창조해낸 전설적 천재 작가에 대한 '오마주'인 듯 보이지만, 한 꺼풀 들춰보면 인종 차별주의자이자 남성 우월주의자였던 러브크래프트의 문법과 서사를 파괴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제 상업적으로 팔리지 않는 기존 가부장적 질서와 인종적 전형성을 해체하고 그 빈 자리를 대중예술의 주요 소비층으로부터 환영받는 '정치적 올바름'(PC)의 시각으로 대체했다.

흑인 주인공들이 능동적 주체로 나서 백인 남성의 중심 권력 구조를 전복하려 하는 한편,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등장했던 각종 초자연적 현상에 맞서고 문제를 해결한다.

여성 인물들도 부차적이거나 단편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복합적이면서 주도적인 역할로 그린다.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이다.

흑인들에게는 '러브크래프트 컨트리'라는 제목이 딱 어울리던, 공포의 시절이었다.

당시는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 분리를 의무화했던 '짐 크로법'이 시행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여행하든, 출퇴근하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에 항상 떨어야 했다.

이는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초자연적 공포' 못지않았다.

작가는 당시 흑인들이 느꼈을 이런 현실 속 공포를 미스터리, 초자연, 공상과학(SF), 판타지, 호러, 누아르, 블랙코미디, 역사소설 등 다양한 기법과 장르로 직조해 흥미로운 모험담으로 바꿔놨다.

SF 팬이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흑인 청년 애티커스가 아버지를 찾아 어떤 마을로 향하면서 여러 가지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고대 의식과 흑마법이 등장하고 괴물과 유령도 나온다.

변신술과 시간 이동, 대체 우주 등도 볼 수 있다.

최고의 원작만을 극화한다는 유료 케이블 채널 HBO에서 동명의 미니 시리즈로 만들어 방영 중이다. 엔데버 어워드를 비롯해 각종 도서상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