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히트 상품] 고혈압 시장 뒤흔든 ‘블록버스터 신약’ 보령제약 ‘카나브’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가 지난해 원외 처방액 1000억 원을 돌파했다. 국산 신약이 연 매출 1000억 원 벽을 돌파한 건 LG화학의 당뇨치료제 ‘제미글로’ 이후 두 번째다. 카나브의 적응증이 추가된 데다 70세 이상 고령층도 사용할 수 있게 된 만큼 향후 매출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원래 폭탄에 쓰는 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이 보유한 폭탄의 위력이 ‘한 구역 (block)을 날려버릴(bust) 정도’로 강하자 이런 별칭이 붙었다. 이후 ‘흥행 영화’란 의 미로 쓰임새를 넓힌 블록버스터는 언제부턴가 제약·바이오업계에서도 흔히 쓰는 단어가 됐다. 통상 연매출 1000억 원을 넘긴 의약품에 이런 타이틀이 주어졌다. 연매출이 1조 원을 넘으면 블록버스터 앞에 ‘글로벌’이 추가됐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말 그대로 폭발력이 큰 치료제다. 뛰어난 치료 효과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신약이 여기에 해당된다. 신약이라고 모두 블록버스터가 되는 건 아니다. 2019년까지 국내 제약사가 만든 신약 30개 중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른 건 LG화학의 당뇨 치료제 ‘제미글로’ 하나뿐이었다.

‘2번 타자’는 곧바로 나왔다. 보령제약이 개발한 고혈압 치료제인 ‘카나브’(성분명 피마살탄)가 지난해 국내 블록버스터 신약 2호로 합류한 것. 의약품 시장조사기 관인 유비스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카나브 및 카나브를 기반으로 한 복합제 매출(원외처방액)은 1039억 원으로 처음 1000억 원을 돌파했다. 2011년 출시한 지 10년 만에 이룬 성과다.

블록버스터로 성장한 카나브 패밀리 카나브는 국내 첫 고혈압 신약이다. 혈압 상승에 관여하는 앤지오텐신II수용체의 결합을 억제하는 ARB(Angiotensin II Receptor Blocker) 계열 성분으로 만들었다. 보령제약이 국내 최초로 ARB 계열 고혈압 신약 개발에 뛰어든 건 1992년. 제약사마다 글로벌 의약품 베끼기에 급급했던 그 시절에 보령제약이 신약 개발에 나서자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쓸데없는 데 돈만 쓰고 결국 포기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실제 카나브 개발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 었다.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데만 6년이 걸렸다. 임상시험 등 이후 과정도 수월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원인으로 프로젝트 전체가 중단위기에 놓이기도 했고, 연구를 거듭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개발 중단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기를 18여 년. 마침내 모든 난관을 뚫고 2010년 9월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신약 허가를 받았다. 우리 기술로 만든 첫 국산 고혈압 치료제는 이듬해 3월 1일 약국 매대에 올랐다. 이렇게 출발한 카나브가 출시 10년 만에 국내 고혈압 치료제 시장의 최강자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검증된 치료 효과’가 있었다. 2018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고혈압학회 에서 발표된 FAST(Fimasartan Achieving SBP Target) 연구 결과가 대표적인 예다.

FAST는 경증 및 중등도의 본태성 고혈압 환자 대상으로 카나브의 주성분인 피마 살탄의 혈압 강하 효과를 발사르탄(성분명)과 비교한 무작위, 이중맹검, 활성 대조, 우월성 검증 연구를 말한다.

연구진은 24시간 혈압검사(ABPM·Ambulatory Blood Pressure Monitoring)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혈압이 조절되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피마살탄은 발사르탄보다 빠르고 강하게 혈압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11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고혈압학회도 카나브의 치료 효과를 전 세계에 알리는 무대가 됐다. 카나브의 주성분인 피마살탄이 남녀 모두에서 발사르탄보다 강력한 24시간 수축기 활동혈압(SABP) 강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카나브 패밀리는 그동안 한국 중남미 러시아 등지의 환자 5만여 명을 대상으로 수많은 임상을 진행했다”며 “이를 토대로 나온 102편의 논문을 통해 치료 효능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복합제 앞세워 시장 공략

만약 ‘카나브 패밀리’로 불리는 카나브 기반 복합제들이 없었다면 이 약은 블록버스터 명단에 오르기 힘들었다. 지난해 카나브 단독 매출은 492억 원으로 전체 카나브 계열 매출의 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보령제약은 고혈압 치료제 시장 트렌드가 단일 제제에서 복합제제로 넘어가는 점을 감안, 카나브에 다른 성분을 추가한 복합제제를 잇달아 내놓았다. 카나브와 다른 기전의 고혈압 치료제 또는 고지혈증을 치료하는 약물을 카나브와 결합해 복용 편의성을 높인 약품들이다.

모두 5종으로 카나브플러스(카나브·이뇨제 복합제, 국내에서는 동화약품이 ‘라코르’로 출시), 듀카브(카나브·암로디핀 복합제), 투베로(카나브·로수바스타틴 복합제), 듀카로(카나브·암로디핀·로수바스타틴 등 3제 복합제), 아카브(카나브·아토르바스타틴) 등이다.

매출만 따지면 카나브 단일제제보다 복합제 성장세가 훨씬 가파르다. 지난해 카나브 매출 성장률은 4.2%에 그친 반면, 듀카브(원외처방액 351억 원)의 성장률은 22.3%에 달했다. 투베로(48억 원)의 경우 원외처방액은 많지 않았지만 성장률(40%)은 매우 높았다. 3가지 약제를 하나에 담은 듀카로(64억 원)는 출시 6개월만인 작년 8월 동일 제형 복합제 시장에서 처방액 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보령제약은 내년에 카나브와 칼슘통로차단제(CCB·Calcium Channel Blocker) 계열 고혈압 치료제인 암로디핀, 그리고 이뇨제를 합친 고혈압 3제 복합제도 내놓을 계획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카나브의 물질특허 만료기한(2023년 2월)이 아직 2년 남은데다 카나브 패밀리의 대표주자인 듀카브의 경우 제형특허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어 제네릭 의약품 출시가 불가능하다”며 “카나브 패밀리의 성장세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령제약이 카나브의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자신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선 적응증 확대다. 지난해 이미 식약처로부터 ‘단백뇨 감소’ 적응증을 새로 받았다. 구체적으로 ‘고혈압의 치료요법으로서, 고혈압을 동반한 제2형 당뇨병성 만성 신장질환 환자의 단백뇨 감소’에 대한 치료제로 쓸 수 있게 됐다.

사용 연령이 확대된 것도 매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회사는 내다보고 있다. 식약처가 지난해 보령제약이 제출한 임상 결과를 받아들여 카나브 사용상 주의사항에서 ‘이 약은 70세 초과 고령자에 대한 투여 경험이 없다’는 문구를 빼줬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혈압 환자가 많은 고령층을 카나브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